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20)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 믿음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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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20)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 믿음의 공동체 <골로새서 3:12~17>

일요시사 0 62 0 0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는 뉴질랜드 이민이 본격화되어가던 1995년에 창립되었습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새롭게 정착해가는 과정 가운데 여러 가지 힘겹고 어려운 시간들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들 잘 이겨내며 소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주를 향한 믿음이요, 예배하는 삶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몇몇 성도님들이 함께 마음을 모아서, 서울 광림교회 본당에 교회 설립의 요청이 담긴 선교편지를 보냅니다. 당시 담임목사님이셨던 김선도감독님은 해외에서 예배의 처소도 없이 영적으로 갈급해하는 성도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여겨 한걸음에 달려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즉시로 교회설립을 위한 예배를 드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님을 파송해주셨습니다. 또한 큰 선교비를 보내주셔서 지금의 이 교회와 사택까지 구입하여 너무나도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편안하게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2022년 11월에 소천하신, 우리 김선도감독님, 광림교회에 터키, 모스크바, 일본, 몽골, 중국 등등 많은 해외 선교지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이곳 뉴질랜드광림교회를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이 끊이지 않고 이번에 우리 박관순사모님께서방문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김선도감독님만이 아닙니다. 인사말씀을 통해서 만난 것처럼, 김정석감독회장님도 늘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에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늘 격려해주시고, 이 시간 함께 자리해 주신 박관순사모님과 우리 장로님 권사님들의 사랑과 물질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 교회가 이렇게 든든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든 뉴질랜드광림교회 성도님들의 예배하는 삶, 기도하는 삶, 헌신하고 봉사하며 주의 사명 감당하는 삶을 통해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여기까지 이른 줄 믿습니다. 또한 지금 함께 예배하는 노년에서 장년과 청년, 그리고 교회학교 모든 어린 심령까지, 우리의 믿음과 섬김과 헌신이 오늘의 열매가 된 줄 믿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지난 30년간 함께 예배하며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오신 정말 귀한 분들, 더불어 1년, 10년, 20년, 여러 가지 사정과 형편 속에서 이 자리를 거쳐가신 모든 분들의 삶도 함께 모아져 오늘의 뉴질랜드광림교회가 30주년을 맞이한 줄 믿습니다. 함께 기쁨으로 예배할 때에 주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우리 안에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은 창립 30주년 기념주일인 동시에, 부활주일입니다. 아시다시피 2-3년에 한번 꼴로는 부활주일과 창립기념주일이 겹쳐지곤 합니다. 그럼 어디에 더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는가? 조금 애매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게 참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뻐하기만 하면 되잖아요.  부활의 아침에 교회창립주일을 함께 맞이한 우리 교회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교회는 오늘 제목과 같이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 믿음의 공동체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 영상도 보고, 뒤에 여러 순서들도 있기에 평소보다 조금 짧게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모든 것 위에 사랑이 더해집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매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범위와 내용이 얼마나 광범위한지요? 이 모든 말씀을 딱 한 줄로 정리하면 어떻게 되나요?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 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까지 다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주의 백성된 우리 자신의 충만한 사랑받는 모습 또한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누군가 말도 이쁘게 하고, 매사에 꼬인 것도 없고, 늘 긍정적이고 선한 에너지를 풍기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저 사람은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 사랑을 풍성하게 받아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또한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도 받았습니다. 성도들간에 서로를 향한 사랑도 풍성하게 주고 받았습니다. 그렇게 큰 사랑 안에 거하는 자로서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나요? 본문 12절에서 14절까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데, 그것은 바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납과 용서하는 삶을 살되,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그래야 온전해질 수 있다.”  긍휼히 여기는 것, 자비와 겸손의 모습을 보이는 것, 온유한 것, 오래 참는 것,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 그냥 의무감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니까, 인간됨의 도리니까, 학습된 자세로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긍휼에 사랑이 더해질 때, 자비와 겸손에 사랑이 더해질 때, 온유함과 오래 참는 것과 용납과 용서의 모습이 내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실현될 때에, 하나님 원하시는 온전함을 이루게 됩니다. 언제나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로서의죽으심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가운데 보내시사, 십자가로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나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던 우리 인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내 죄를 사해주시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하는 종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됨의 권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참된 평안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모든 자들에게 평안을 선포하십니다. 스승의 죽음으로 낙심한 제자들을 찾아가시사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믿는 자,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주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담대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만난 자, 주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평강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언제나 주의 평강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에, 모든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과 염려, 시기와 질투와 미움은 다 사라지고, 완전한 주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주의 평강을 누리고, 우리의 걸음이 닿는 곳에 주의 평강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합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는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죠.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과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모습,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내 모든 삶의 자리 가운데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고 사람을 대하는가, 그 모습을 통해 성도의 모습이, 믿는 자의 모습이,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의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사람들간에도 서로 마주하고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다 부정적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걸까요? 

  

사람의 육체에 있는 피부질환 같은 경우도, 정말 피부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는 속에 문제가 있어서 그게 겉으로 발현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내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말도 표정도 행동도 달라지게 됩니다.   본문 17절에 말씀하죠. 예수님의 이름을 대도 문제가 없을만한 말과 행동과 삶의 모습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계속 말씀드린대로 내 속에 무엇을 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럼 무엇을 품어야 하나요? 본문 16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의 말씀이 풍성하니까, 이어지는 것이 뭔가요?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했을 뿐인데, 결과는 어느새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 모습이 증거됩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말씀의 풍성한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말과 행동과 표정과 모든 삶의 모습을 통해 주변으로 아름답게 잘 흘러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우리 뉴질랜드광림교회가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 믿음의 공동체로 견고하게 세움받아, 지난 30년의 역사를 넘어 앞으로 더 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감에 있어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부활의 생명력을 지닌 성도로서,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주의 뜻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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