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52)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이사야 42:1~9>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이미 구원의 자리에 서 있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해마다 성탄의 절기에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노래하고,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대림절 절기를 지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세상의 흥청임과 연말연시의 들뜸을 넘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기쁨으로 주의 오심과 다시 오심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깊이 묵상하고, 더 큰 기쁨으로 찬양해야 할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온유함으로 품어주십니다.
본문 2절에서 4절까지 단 세절의 말씀에 “아니한다”는 말씀이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반대로 하시는 것은 딱 한 가지뿐입니다. “정의를 세우신다.” 여기서 정의는 죄 사함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정의를 행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성품을 일곱 번의 “아니하며”로 표현합니다.
그 중에서 먼저 2절에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지만, 사실 다 같은 말씀이죠. 한 마디로 큰 소리 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온유하신 예수님입니다.
온유함은 또한 사랑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온유해야 참을 수 있고, 온유해야 시기하지 않거든요.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외치지 않으십니다.여러분 목소리 크게 내지 마십시오. 열나고 화나고 흥분되고 억울하면 목소리가 커지기 쉽지만, 그렇게 해서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경우가 별로, 아니 전~혀 없습니다. 목소리 크게 낼 때는 찬송할 때하고, “아멘” 할 때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온유함을 닮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3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십니다.” 이 말씀 역시 온유함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말씀이죠. 상한 갈대는 그냥 두어도 결국 꺾어질 겁니다. 꺼져가는 등불은 그냥 두어도 결국 꺼질 겁니다. 그런데 그걸 꼭 쫓아가서 꺾어버리고, 꺼뜨려 버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어서 4절에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삶 속에서 지쳐 쇠한 영혼을 어루만지십니다. 그 때 오늘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을 앙망하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온유함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모든 삶의 걸음 가운데도 붙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 가지고, 주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 온유함으로, 자비함으로, 다시 일어섬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완전한 회복을 이루어 주십니다.
앞서 예수님의 성품을 말씀한 후에, 이어지는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증언합니다. 본문 5절에서 7절까지를 보면, 마치 장엄한 대서사시와 같은 어조로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을 창조하여 펴신 분”이십니다. 창조의 주 하나님이십니다. 이어서 “땅과 그 소산을 내시는 분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아가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신 분입니다.” 모든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는 생령이 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상의 네 가지 표현을 통해 드러내고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하고도 명확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의 뜻과 섭리로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생명까지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불렀으.” 이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로 보내신 택함받은 종인 예수님을 통해 행하실 사역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뜻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말씀하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셨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가르켜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 선민”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정말 중요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삼아주셨다 말씀이 곧 하나님께서 저들의 모든 삶을 책임져주시겠다는 약속의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근거하여, 지금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해방시켜주시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택하심의 선포는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을 향해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해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 십자가로 구원받은 우리들을 주의 백성으로 불러주셨고, 우리의 삶도 책임져주시는 줄 믿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완전한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실 구원의 역사, 완전한 회복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시고 택하시고 주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회복시키심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그 은혜를 이미 받은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그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는 세상에서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일지라도, 하나님 예비하신 완전한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창조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십니다. 이러한 주의 은혜 안에서, 신앙의 삶 속에서나, 세상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나 완전한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약속의 성취를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약속의 성취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첫 번째에서 말씀드린 바, 하나님의 택하신 종인 예수님의 성품을 바라보고 닮아가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소망하고 이루어가야 할 일입니다. 또한 두 번째에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선포,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것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성취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40년부터 681년까지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남유다의 요담왕 때부터 아하스와 히스기야를 거쳐, 므낫세 왕 초기까지입니다. 그래서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려서 기도할 때에 15년을 더 살게 되었는데, 그 때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들려준 것이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남유다의 패망은 이사야가 죽고 나서도 100년 정도가 지난 시점인, 주후 586년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모두 앞으로 임할 일들에 대한 예언인 거죠.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성취, 즉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또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십자가를 향한 믿음으로 그 예언의 성취를 이미 내 개인적인 삶에 이루었습니다. 더불어 이 땅의 삶을 마치는 순간, 주님 품에 안겨 저 천국에 이름으로 그 예언의 성취를 완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또한 온 인류를 향해, 무엇보다 나를 위한 약속의 성취를 이루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약속의 성취를 위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완전한 회복의 역사에 동참할 때에, 우리의 삶의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이 약속의 성취를 이루는 가장 큰 기쁨의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삶이 곧 2025년 대림절 기간을 지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신앙의 자세입니다.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시고자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또한 우리에게 다시 오심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며 살아가는 이 복된 대림절 기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