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톡톡; 지금과 여기 티키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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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일상톡톡; 지금과 여기 티키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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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여기 티키타카

-타카푸나 비치, 페이퍼 문 두 조각 사이에서


지금과 여기

타카푸나 비치 쪽 카페는

아침과 오후의 경계쯤이 가장 좋다.

사람도 많지 않고,

바다는 말없이 제 자리에 있다.

창가 자리에 앉은 두 남성 시니어가

바다를 보고 있었다.

“오늘은 파도가 얌전하네.”

지금이 먼저 말했다.

“우리가 시끄러웠던 거지.”

여기가 커피잔을 돌리며 웃었다.

테이블 위에는 페이퍼 문 두 조각과

막 내려온 커피가 놓여 있었다.


“이상하지 않아?”

지금이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고 말했다.

“젊을 때는 이거 먹을 시간 여유도 없었는데,

지금은 여유는 있는데

마음이 아직도 조금 분주해.”

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딱 그 말이야.

시간도 있고, 돈도 그때보단 낫고,

몸도 아직 쓸 만한데

왜 이렇게 마음이 바쁜지 모르겠어.”

잠깐 침묵이 커피 향에 스며들었다.

커피 머신 소리와


잔잔한 파도 소리가 겹쳤다.

“혹시…”

지금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너무 오래

다음만 보고 살아서 그런 거 아닐까.”


“다음, 다음, 다음…”

“맞아.” 여기가 바로 받았다.

“좋은 유튜브 영상만 봐도

다음 것, 또 다음 것, 또 새로운 것.”

“다음 동영상 찾지. 쇼츠는 더하지.”

지금이 덧붙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웃음 뒤에 남는 공감한다는 뉘앙스가

두 사람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했다.

여기가 바다를 보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노후에도

그 ‘다음’ 방식 그대로 살면

행복은 오히려 줄어든다잖아.”

“누가 그러던데?” 지금이 물었다.

“의사도 아니고, 강연자도 아니고.”

여기가 지긋이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냥… 살아본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도파민 이야기가 나왔다.

“도파민 때문이래.”

천연덕스럽게 여기가 말했다.

“또 어려운 말 나오네.”

쉬운 말로 하라고 지금이 퉁을 놓았다.

“쉽게 말하면 이거야.”

여기가 손으로 공중에 선을 그었다.

“뭔가 얻을 때 번쩍 기분 좋아지는 거.”


“아, 그거. 성공. 성취.”

지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거나, 인정받거나,

통장에 숫자 늘어날 때.”

“근데 그게 오래 안 가잖아.”

여기가 말했다.

“그래서 또 찾고, 또 찾고.

재미난 쇼츠 영상을 또 찾는 것처럼.”

지금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젊을 땐 성취 같은 게 필요했지.

안 그랬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고.”

“맞아.” 여기가 천천히 말했다.

“문제는 아직도 그걸로만 살려고 하는 거지.”


“그럼 이제 뭘로 살라는 거야.

지금이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잖아.”

“세로토닌이랑 엔돌핀.”

단도직입적으로 여기가 말을 던졌다.

“또 나왔네. 어려운 문자 쓰는 것.”

지금이 웃음을 터뜨렸다.

“좀 알아듣기 쉽게 사람 말로 해봐.”

여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세로토닌은 말이야,

비교 안 할 때 생기는 거잖아.”

“비교 안 할 때?”

“응. 지금 이 정도면 괜찮다고

스스로 허락할 때.”

지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눈 떴는데

허리 덜 아플 때

괜히 기분 좋은 거 있잖아.”


“바로 그거야. 세로토닌은 관심만 가지면

내 주변에 지금도 수두룩해.”

편안하게 여기가 웃었다.


엔돌핀은 의외로 가까웠다.

“그럼 엔돌핀은?” 지금이 물었다.

“힘들어도 해내고서 버텨낸 하루.” 여기가 말했다.

“대단한 거 아니고, 운동하거나 산책하고 와서

‘오늘 할 건 했다’ 싶은 그 느낌이 들면 나온대.”

“일 마치고 괜스레 혼자 뿌듯해질 때.”

“그게 엔돌핀이래. 엔돌핀은 고생후에 얻는 보람이지.”


비율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며 말했다.

“노후엔 이 비율이 좋대.”

“비율이라니? 무슨 비율이?”

지금이 고개를 들며 여기를 바라봤다.

“세로토닌 60%, 엔돌핀 30%, 도파민 10%.”

지금은 잠시 말이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우린 거꾸로 살았네.”

여기가 웃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았잖아.”


영화 얘기로 흘렀다.

“오징어 게임 기억나?”

지금이 오징어 게임 대사 하나를 말했다.

‘돈이 생기면 그때부터 더 큰 지옥이 시작된다.’

“그게 도파민 얘기지.”

여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왕자도 그렇게 얘기했잖아.”


지금이 이어갔다.

“중요한 건 눈에 안 보인다고.”

두 사람은 멀리 서 있는 랑기토토 섬을 봤다.

말하지 않아도 여유로운 순간이었다.

시니어는 눈에 안 보이는 중요한 것을

보는 은총의 나이대라고.


여유라는 건

“결국 여유라는 게…”

여기가 조용히 말했다.

“더 갖춰서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태를

괜찮다고 받아들이는 거 같아.”

지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 커피랑

이 바다랑 이 페이퍼 문도 말이야.”

“맞아.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는 거.” 여기가 웃었다.

“예전엔 이런 거 눈에도 안 들어왔잖아.”

“그렇지. 눈에 보이는 거가 다가 아니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산을 하고

두 사람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엔 케이크 없이도 되겠다.”

지금이 말했다.

“그래.”

여기가 웃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바다는 그대로였고,

두 사람의 걸음이

조금 바쁠 것도 없이 느긋해졌다.

그 느긋함이 왠지


잔잔하게도 여울지는 구름 나그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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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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