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64)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3:1~6>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입니다. 오늘은 우리 대한민국의 3.1절 107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매년 3.1절이 되면 예배 말미에 한글 독립 선언문을 함께 낭독하고, 애국가를 부릅니다. 우리가 머나먼 이국 땅에 살아가고 있지만, 두고 온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마음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요? 사람이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불리워지는 이름이 달라집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말이, 행동이 달라집니다. 앞서 몇 명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해드렸는데, 그 일을 아무나 하나요.마음 속에 피끓는 나라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야말로 목숨 내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비슷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사건 이후로, 초대교회에 날마다 믿는 자가 더해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유대교에 의한, 로마 제국에 의한 박해는 점점 더 심해집니다. 그 속에서 충만한 은혜를 잃어버리고, 흔들리고 실족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당시 모든 서신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끝까지 흔들리지 마라.” 오늘 히브리서 기자도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흔들림 없는 믿음의 삶, 구원의 여정을 완수함에 있어서 십자가를 참아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힘만 가지고는 어렵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수 있는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자의 삶은 무엇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나의 믿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독립 운동가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우리나라는 자주 독립국이다.” 이게 바로 정체성입니다. 국가적으로든지, 민족적으로든지, 또한 신앙적으로든지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앙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본문 1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 앞에 선 모든 믿음의 백성들을 향해 뭐라고 부르고 있나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정체성입니다.
본문에는 특별히 모세를 등장시킵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인가요? 본래 혈기왕성한 사람이었죠. 애굽에서 왕자로 지낼 때에,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불러내시고, 40년 동안 힘을 빼십니다. 혈기를 다 녹여내십니다.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모세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그 자신만만하던 모세는 사라졌습니다. “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계속 뒤꽁무니만 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면서 다그치실 때까지 못한다고만 합니다. 힘을 너무 빼셨나요?
그런데 그가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애굽으로 향하는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출애굽기 4장 20절입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하나님의 지팡이! 이 한마디에 모세의 믿음의 정체성이 담겨집니다. 모세는 그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적을 행합니다. 홍해를 갈라 구원의 길을 엽니다. 당대 가장 큰 세상 권세자인 애굽 왕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는데는 세계 챔피온급인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도 끝까지 주의 사명 감당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모세의 모든 여정에 흔들림이 없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 오늘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 즉 천국의 시민권자입니다. 거룩한 형제요 자매입니다. 주의 택함 받은 백성, 주의 자녀됨의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때에, 내 안에 이러한 믿음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하고 선명해집니다. 분명한 믿음의 정체성 위에서 언제나 흔들림 없는 담대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나의 믿음의 시선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시선, 바라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 죽으심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광야에서 죄악으로 인해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백성들, 저들이 살 수 있는 길은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것 뿐입니다. 뱀에 물린 상처, 암만 바라봐야 상처가 나을리도 없고, 살 길은 더더욱 없습니다.
죄악 중에 거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믿음의 시선이 주의 십자가를 향할 때에, 거기에 죄 사함의 은혜가 있고, 거기에 생명이 있고, 거기에 구원이 있고, 거기에 천국의 길이 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말씀하신 후에, 곧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걸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잘 바라보고, 잘 걸어가는 것입니다. 바울도 고백하죠.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려가노라.” 예전에 우리 어르신들 기도하실 때에 그런 기도 많이 하셨잖아요. “벧세메스의 암소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은 것처럼 바른 길로 가게 하옵소서.” 흔들림 없는 믿음의 시선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입니다.
여기 보면 우리가 바라볼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을 두 가지 호칭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입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가 뭔가요? 마태복음 16장에 베드로가 고백했죠. “주는 그리스도시오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확고한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게 하고자 보내심을 받은 사도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온 백성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대제사장이 되시고, 친히 대속의 제물이 되시사, 온 인류의 죄를 사하는 십자가의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9절과 20절에 말씀하죠.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입니다. 주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그 믿음의 시선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오직 주의 십자가만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이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의 십자가를 향한 확고한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생명의 길로만 걸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나의 믿음의 삶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오늘 제목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내 마음의 결단입니다. 첫 번째에서 말씀드린 내 믿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신앙 안에 있는 나 자신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어서 내 믿음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해야 함은 내 삶의 방향성을 뜻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대지인 “나의 믿음의 삶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내 삶의 실제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믿음의 정체성을 가진 자로서, 주의 십자가를 향한 믿음의 시선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실제적인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 번 따라하겠습니다. “신실함으로.” 신실함입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의 이야기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그럼 본문에 기록된 모세의 모습은 어떤가요? 2절에도 그렇고, 5절에도 그렇고, 본문에서 모세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신실함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신실한 모세도 오늘 예수님에게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도 없고, 혹 그런다 해도 그게 구원의 십자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실한 믿음의 걸음, 모세만 따라가도 준수합니다. 사실 모세만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목표는 잡아야죠. 아예 따를 수 없는 예수님처럼까지는 못할지라도, 그래도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품겠지만, 모세와 같이 하나님 앞에 신실함으로 서고자 결단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과 능력을 더해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실제적인 믿음의 삶, 견고함으로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던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였던 모세와 같이,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충성됨으로 믿음의 삶을 견고하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삶의 걸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믿음의 백성들의 신실한 삶을 통하여 우리 대한민국에, 또한 이 땅 뉴질랜드에, 우리가 품고 기도하는 세계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