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0);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교민뉴스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70);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데살로니가전서 5:16~24>

오늘 본문은 성도들의 바른 신앙의 삶에 대한 권고입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데살로니가전서 5장의 말씀은 1절과 2절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앞선 내용들을 보면,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로서의 삶에 대해서 아주 직접적으로 말씀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을 기다리는 자로서,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 새로운 믿음의 결단을 세워가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16절에서 18절까지 보면 아주 익숙한 말씀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죠. 

 

 “신앙의 삶 속에서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은 항상 기뻐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상황 때문에, 환경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기쁨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나요? 내 안에 영적인 기쁨이 충만하면, 구원의 감격이 충만하면, 모든 것을 초월하여 기뻐할 수 있습니다.아주 큰 기쁨이 있으면, 작은 슬픔을 넘어서는 것과 같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은 기도하되,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루 24시간 기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본문의 “쉬지 말고”를 헬라어 원어로 보면, “아디-알레잎토스”라고 하는데, 뜻은 “끊임없이, 계속해서”입니다. 이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게, 요즘 스마트폰입니다. 지금 시대에 스마트폰이 손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게임하고, 인터넷하고,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노상 핸드폰이 내 마음에, 내 손에 있지 않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늘 감사가 넘쳐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감사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불평거리 만들 것도 없어요. 그런데 한 번 불평과 불만을 만들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불평거리가 나옵니다. 반대로 감사거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정말 범사에 감사밖에 없고, 그로 인해 더 큰 감사거리가 생겨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범사에, 정말 모든 일에 늘 감사가 넘쳐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대단하게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되, 항상 기뻐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되,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바른 분별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인터넷만 들어가면 무궁무진한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속에 진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것도 많다는 거죠. 따라서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제팩트체킹의 날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 4월 2일이 국제팩트체킹의 날이었는데, 구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접할 때에 사실의 진위여부를 잘 판단하기 위한 5가지 질문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출처가 어디인가? 두 번째, 출처를 신뢰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전문가’가 누구인가?  네 번째, 나에게 “좋아요, 공유, 구독 또는 구매할 것”을 지시하고 있는가? 마지막 다섯 번째, 충격적이거나 두려움이나 증오를 불러일으키려고 하는가? 

  

세상에는 정말 악의적으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별력 없이 살다가는 내가 그 악의적인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나팔수로 쓰임 받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막 휘둘리면 안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우리를 흔들고자 하는 악한 영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 악한 영이 내 주변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이용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환경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말씀에 비추어서, 또한 기도하면서 잘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본문 19절에 말씀하죠.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20절에는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21절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22절에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신앙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분별력입니다. 바른 분별력은 내 영적 시선이 십자가를 향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에 나 자신을 비춰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고전 책의 제목처럼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하며 진중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런 저런 것에 휘둘리지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세상의 삶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영적으로나 삶적으로 바른 길로 걸어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온전한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처음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데살로니가전서의 마지막 장인 5장의 큰 주제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인 23절은 마치 결론과도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주님 앞에 서는 우리들의 준비된 모습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는 것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 또는 내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그 순간, 우리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읽어드린 23절에 말씀하죠.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올려드리는 제물의 조건과 똑같습니다. 세 가지가 나오죠. “온전함, 거룩함, 흠이 없음.” 각각 다른 단어지만, 실상은 다 같은 뜻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다 알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만, 실제로는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본문 24절에 다시 덧붙여 말씀합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내 힘만 가지고 이루어가는 것 쉽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심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온전한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으면, 그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 내 신앙의 양심에 비추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 삶을 미쁘신 하나님께서 온전한 신앙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거룩하고 흠없는 온전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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