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348) 더욱 넘쳐나는 은혜 <로마서 5:1~11>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5장 2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내 죄가 얼마나 큰지를 분명하게 깨닫고 고백할수록 죄 사함의 은혜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는 거죠.
어두운 삶을 살아갈 때는, 늘상 죄를 지을 때는 그게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니까, 빛 되신 주님 앞에 비춰보니까, 깨달아지는 겁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는 자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 결과 이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의 죄를 더 깊이 깨닫는 자,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여기서 우리가 한 것은 “믿음으로” 여기까지 밖에 없습니다. 예수 십자가 부활, 그 복음의 진리를 믿은 것까지밖에 없습니다.그 다음 의롭다 하여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심도 예수님의 은혜요, 이제 우리가 할 것은 나에게 주어진 그 모든 은혜를 더욱 넘쳐나도록 누리는 것 뿐입니다. 어떻게 누려야 하나요? 무슨 근거로 누릴 수 있나요?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에게는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다.
성도의 신앙은 환란에서 시작됩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이 감리교 운동을 벌일 때에, 매일 욕하는 사람, 돌 던지는 사람을 만나곤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욕하면서 돌을 집어 던지는데, 돌을 맞으면서 감사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아가고 있군요.”본문의 말씀을 받고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 당시 바벨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환란의 원어적인 의미를 보면, “포도즙을 짜내는 고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극심한 환란이라는 거죠.그 속에서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내였습니다. 인내하는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 연단이 됩니다. 연단의 과정을 통해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더 높은 곳에 이르게 됩니다.그리고 다음은? 소망으로 갑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 주어진 확실한 소망은 무엇인가요? 우리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을 향한 소망입니다. 이러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에, 오늘의 삶에 더욱 넘쳐나는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습니다.지금 환란이 있어도, 지금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사람이나 상황을 만날지라도, 지금 내 신앙의 길에 위협이 되는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넘어지지 않고, 실족하지 않고, 도리어 그 환란을 인내로 끝까지 견디어, 연단의 시간으로 삼아, 오히려 더 신앙이 반짝반짝하게 성장하고 성숙하며, 날마다 소망의 성취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소망과 소원은 다른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늘의 소망과 내 마음으로 품은 소원은 다른 차원입니다. 소원은 이뤄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이러한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소망이 훨씬 더 큰 겁니다. 하늘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 지금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인해 낙심하고 실족하지 않습니다. 더 크신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봄으로 인내하고 연단하고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 주신 확실한 소망이 있습니다. 저 하나님 나라의 소망, 구원의 소망, 천국의 소망, 부활과 영생의 소망입니다. 이러한 하늘 소망을 품고, 하나님 주신 은혜를 더욱 넘쳐나도록 누려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는 측량 못할 사랑이 있습니다
5절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의 소망이 확실한 증거는 우리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는 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확실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너무나도 쉽고 명확하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첫부분에 이렇게 기록하죠. “이처럼”,
그러면 “이처럼”이 뜻하는 게 뭔가요? 모세의 광야에서의 뱀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광야 시절에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징계하시려고 불뱀을 보내시고, 사람들이 뱀에 물려 죽어갑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더니, 놋으로 뱀 형상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라 명하십니다. 그리고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보는 자들은 정말 다 살아납니다.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자에게 생명을 주신 것처럼,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은 믿음으로 바라본 것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순간, 자신은 죽을 것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광야의 패역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의 사랑으로 놋뱀을 통해 치유와 생명을 허락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사.” 죄인된 나를 위하여, 여전히 연약하여 죄의 유혹 중에 살아가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8절 후반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심을 확증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러한 측량 못할 사랑이 부어져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의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요, 대속의 십자가인 동시에,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측량 못할 큰 사랑을 확증합니다.그 사랑이 십자가를 향한 믿음을 갖는 순간 내 안에 부어졌음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 가지고,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측량 못할 사랑 안에서, 주님 주신 크신 은혜를 더욱 더 넘쳐나게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우리에게는 넘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는 원인에 따른 결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사실 이거면 끝입니다. 이것만 해도 넘치는 기쁨의 이유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화평의 근거가 무엇인가? 구원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까지는 원인이요,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구원을 받습니다.” 이어서 10절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여기까지는 원인이요, 그 결과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둘 다 구원의 결과를 말씀합니다.
이어서 마지막 11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 말씀은 5장의 중간 결론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한 제물 되신 예수님으로 인한 즐거움, 하나님 허락하신 참된 기쁨입니다.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예수 믿는데, 방해되는 상황이나 환경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안정적일 때, 신앙의 삶이 너무나도 편안하게 되었을 때, 오히려 더 큰 영적 문제들이 생겨나곤 합니다. 의미 없는 논쟁, 습관화된 신앙, 그 속에서 십자가 구원의 감동과 감격의 상실, 이로 인해 영적인 참된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5장 전체에는 바울의 벅찬 감동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그로 인해 죄인된 우리들이 의롭다 칭함 받은 그 은혜가 너무나도 크고 감사하여, 벅차오르는 감동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걸 느껴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에게 허락하신 넘치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막 즐거워서, 신이 나서, 싱글벙글, 이런 가벼운 기쁨이 아니라, 어지간한 것에는 꿈쩍도 않고, 미동도 하지 않을 꾹꾹 눌러담겨 있는 중에,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벅차오르는 그런 묵직한 기쁨, 영적 감동입니다.
이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데, 제가 권면드린대로 말씀을 읽는 중에,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영적인 기쁨, 그리고 벅찬 감동을 주님 주신 은혜로 날마다 더욱 더 넘쳐나게 누려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