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일상톡톡; 감기약보다 더 쎈 약
목소리 톤에서 느낀 감사
“그렇게 아프던 목감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어.”
아침 햇살이 주방 창가로 스며들 때, 아내의 목소리에서 칼칼한 기운이 사라지고 차분했다.밤새 기침으로 고생하던 얼굴 대신, 오늘은 미소가 피어 있어 안도가 되었다.
어제 아내 친구가 아내와 전화 후, 아내 목소리가 감기로 아픈 상태라는 걸 알아차렸다.
한국에서 약국을 하는 동생이 보내준 조제약을 우리 먹으라고 우편함에 두고 갔다.
그 약을 먹은 뒤, 아내는 훨씬 편안해졌고 나도 기침이 멎어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나도 기침을 심하게 해서 내일 미사 못 갈까 봐 걱정했는데, 그 약 덕분에 괜찮아졌어.”
맞장구치는 내 말을 듣는 순간, 아내가 참 다행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그분 마음이 약보다 더 쎈 약이었어. 그 따뜻한 나눔의 정이 진짜 효험을 본 거지.”
고생한 목을 축일 겸 따뜻한 미네랄 소금차를 끓여 마시고, 아내의 침상에도 한 잔 갖다 놓았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도 조용한 감사가 피어올랐다.
아, 이런 게 건강이고, 이런 게 사람 사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의 삶 속 비타민
이민자로 산다는 건 어쩌면 늘 ‘조금은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낯선 언어,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지켜내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사람 간의 온정이 뉴질랜드에서는 더 귀하게 느껴진다.
아내 친구처럼, 누군가의 아픔을 알아차리고 손 내밀줄 아는 사람이 고맙다.
그런 존재가 바로 ‘이민자의 비타민으로 우리를 지켜준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건강식품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정이 우선이라고 느껴진다.
이민 사회에 진짜 영양제는 사귐과 나눔, 그리고 존중이라고 여겨진다.
그 마음이 사람을 살리고, 병을 낫게 하고, 외로움을 녹여주니 고맙지 뭔가.
“나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지혜
며칠 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방송인 이효리 씨가 한 대담에서 이런 말을 한 게 공감되었다.
이효리씨 에게 물었다.
“효리씨의남편분은 좋은 사람이예요, 나쁜사람이예요?”
이효리씨가 바로 답했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어딨어요? 나한테 맞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아녜요?
때론 부족해도 우린 서로 맞춰가며 살아요.”
참 묘하게 마음에 남는 말이다.
우리는 종종 ‘옳고 그름’으로 세상을 나누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맞고 안 맞음’만 분별하면 된다.
나에게 맞는 옷이 따로 있듯,
나에게 맞는 사람, 나에게 맞는 속도,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있다.
예전처럼 “많이 아는 사람”이 대단한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내게 맞게 맞춰 사는 사람”이 더 현명한 시대가 되었다.
그게 바로 생존이고, 방향이고, 균형이 아닐까.
‘너와 나’ 사이, ‘우리’를 잃지 않기
요즘 세상은 자꾸 이분법으로 나누려 하는 성향이 많다.
정치든, 종교든, 취향이든 이념 논리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
심지어 같은 가족끼리도 의견이 다르면 멀어지는 일도 많아졌으니 말해 무엇 하랴 싶다.
하지만, 인생을 조금 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묘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세상을 두 편으로 나누면 결국 내가 더 힘들어진다는 걸 느낀다.
다른 의견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도가 37% 높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내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어찌 너와 나만 있겠는가. 분명히 우리도 있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와 나의 교집합인 ‘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내게 맞는 삶, 그리고 감사
이번 감기를 통해 새삼 느꼈다.
하느님께서 주신 내 몸은 성전이다.
그 성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숙면, 균형 잡힌 식사, 적당한 운동,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아내와 미네랄 소금차를 나누어 마시며,
그 친구분의 마음을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
“여보, 다 나으면 우리 그 친구분과 꼭 밥 한번 먹지.
고마운 마음은 밥 위에서 나누는 게 제일이잖아.”
그 말에 아내가 웃으며 응답했다.
“찌찌뽕!”
그 짧은 말 속에 담긴 건,
공감이었고, 사랑이었고,
살아 있다는 감사였다.
균형, 존중, 그리고 내게 맞는 삶
이민자의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날엔 외로움이, 어떤 날엔 감사가 찾아온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게 맞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게 맞는 생존,
내게 맞는 방향,
내게 맞는 균형.
그것을 찾는 여정이 바로 인생이려니 싶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누는 따뜻한 차 한 잔,
그 마음 한 스푼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고 싶다.
이효리 씨의 말처럼,
“나에게 맞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이지요.”
오늘도 내게 맞는 하루 방향을 정해 묵묵히 나아가고 싶다.
지금여기, 여유와 기쁨 그리고 평화가 함께 피어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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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동흠
수필 등단: 2015년 에세이문학. 수필집: 아내의 뜰(2021년). Heavens 지금여기(2022년). 수상: 2017년 제 19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 대상 (깬니프!). 2022년 제 40회 현대수필문학상 (Heavens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