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

손바닥소설


 

보자기

오문회 0 1985


어머니는 큰오빠 곁으로 가기로 했다. 육십여 년을 살던 집을 비우자니 그만큼 더께가 앉은 살림살이가 자꾸 나온다. 부엌을 정리하니 막걸리 사발과 놋그릇을 비롯하여 뭉그러진 나무주걱, 아끼시던 꽃무늬 접시도 나온다. 낡은 장롱을 여니 맏며느리가 해온 상이불이 가지런히 개켜져 있다. 한 쪽에는 사십 대에 꽃구경 갈 떄 입었던 개나리색 한복이 걸려있다. 팔십이 넘고는 먼 길 떠날 때 가벼워야 한다고 조금씩 정리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는데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음은 그 물건에 담은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사는 묵은 시간과의 만남이다. ​마당으로 끌려나온 물건은 버릴 것이 많았다. 구석 구석에서 나온 사소한 물건들을 붙잡고 눈을 맞추니 갖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장롱 밑에서 나온 싸구려 비녀를 보며 은비녀를 부러워했던 그 날의 엄마에게 안녕을 고하고, 앉은뱅이 책상서랍에서 쏟아져 나온 오남매의 통지표와 상장을 보며 천지분간 못했던 어린 날과 아쉽게 작별했다.

단출한 이삿집이 한나절이 걸려서야 꾸려졌다. 보자기에 싼 상이불을 트럭에 먼저 실었다. 뻣뻣한 이불 속으로 바람이 들락거려 발이 시리다고 한 아버지가 생각나 차마 덮지 못했던 이불이다. 부드러운 호청을 가만히 쓸어보며 '조금만 더 살지'하고 안타까운 숨을 내쉰 적이 여러 번이었다. 한 번은 덮어야 하는 이불이라고 딱 한 번만 덮었다. 그 이불을 가지고 간들 덮지 않을 것이지만 꼭 가지고 가야 했다. 어머니가 마지막 가는 길에 가지고 가서 아버지와 같이 덮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아는 나는 가슴이 촉촉해졌다. 그 뒤로 몇 개의 보따리를 더 실었다. 떠나는 차에 오르기 전, ​엄마는 뒤돌아서서 찬찬한 눈길을 주며 정든 집과 이별을 했다.

차에 오르시는 어머니의 손에는 하얀 보퉁이가 들려 있었다. 그게 뭐냐고 여쭤 봐도 별거 아니라며 웃으신다. 형제가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고 짐을 정리하느라 어머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보지 못했다. 무얼까. 무엇인데 어머니가 손수 안고 가실까? 보자기 속이 궁금해 갸우뚱거리던 나는 어느새 책보를 메고 팔랑거리는 소녀를 만났다.초등학교 내내 책보와 함께였다. 교과서만 싸면 반듯하게 되는데 필통 때문에, 도시락 때문에 참하게 되지 않았다. 조심스레 걸었어도 학교에 도착하면 물건들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거나 보자기 끝이 느슨해져 책보가 엉덩이에 닿을락 말락 걸쳐져 있었다. 

소풍날에는 책 대신 계란, 사이다, 도시락, 과자를 울퉁불퉁하게 싼 보자기를 메고 신나게 뛰었다. 덕분에 계란이 터지고 반찬 국물이 새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그러나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꾸중도 않고 깨끗이 빨아주는 엄마가 있었으니까. 

새마을 운동은 시골을 변화시켰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친구들이 책가방을 사기 시작했다. ​새 가방을 메고 온 친구가 자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 구경을 했다. 약간의 부러움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철부지였지만 집안 형편을 눈치채고 있던 터라 안 되는 것을 떼를 써서 얻어내는 재주는 없었다. 군말 없이 책보와 시름하며 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에 딱 하나 좋은 것은 책보에서 나는 소리였다. 내가 달음박질 하면 달각달각 박자 맞춰서 울리는 리듬이 음악 시간에만 들을 수 있는 고운 풍금 소리를 연상시켰다. 동요를 흥얼거리며 타박타박 걸을 때는 책보가 있어 참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자기와 연이 깊다. 책보 대신 책가방을 들면 연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앟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자취생의 보자기 안에는 내 먹거리가 들어 있었다. 쌀, 장류를 비롯하여 봄에는 산나물, 여름에는 오이김치, 가을에는 콩잎무침, 겨울에는 시래기 등 철마다 다른 것이 담아졌다. 가끔 간식거리도 보태어졌다. 엄마가 챙겨주는 것을 다 넣다보니 삐죽하게 나오기도 하고 위로 불뚝 솟기도 하여 손에 들린 보따리는 참으로 볼품없었다. 그래도 툴툴거리지 않고 부지런히 들고 다녔다.

종이가방을 들면서부터 예가 아닌 아니오가 많아졌다. 엄마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한결 같은데 보자기 아닌 종이가방은 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따. 폼이 나게 들고 다니려면 물건을 꽉 채우면 배가 볼록해서 안 되었다. 무엇보다 무거워서 가방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난감한 일이었다. 자꾸만 더 가져가라는 것을 됐다고 거절하고, 종이가방 크기에 맞도록 양을 덜어내고 물건을 뺐다.

사람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 기준은 어쩌면 사소한 행동에서 시발점이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종이가방에 짐을 꾸리면서부터 내 기준에 맞춰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지 싶다. 인간관계에서도 고정된 틀을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들어올 사람과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을 가려내었다. 안에서 바깥으로 자유롭게 드나들던 마음을 받아주는 문이 점점 작아졌다. 뒤웅박처럼 줄어든 가슴으로 못난 것을 품기보다 불만을 키우면서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가 멈추었다. 형제들은 이삿짐을 들이느라 부산하다. 그 틈에 어머니 손에 있던 보퉁이가 온데간데없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식구들과 얘기하고 있을 때 안방에서 짐들을 더듬었다. 상이불 속에 끼워져 있었다. 얼른 꺼내 펼쳤다. 갈색 삼베옷이 단정하게 개켜져 있다. 몇 년 전 윤달에 흘려 들었던 말이 스쳤다. 먼 길 떠날 때 입고 갈 옷을 당신 스스로 마련할 때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끝까지 자식들의 걱정을 싸안으려 한 엄마의 마음의 전해져 눈앞이 흐려졌다.

세상에서 엄마를 닮은 물건을 찾자면 보자기가 아닐까. 어떤 모양도 다 쌀 수 있는 보자기이고, 부족하고 못나도 치마폭으로 감싸 안아 가려주는 어머니이다. 또한 자식들 걱정으로 해진 마음을 다시 여미듯 오래 되어 뜯어진 보자기도 꿰매어 다시 쓸 수 있지 않은가. 많이도 닮았다. 엄마의 보자기는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여 한계절 묵힌 오월의 바람향에 가득하다. 자취생 시절 수없이 꾸렸던 보따리가 주위를 에워싼다.

눈가를 지그시 누른 휴, 서랍에서 보자기를 꺼냈다. 엄마의 개나리색 한복을 곱게 접어 보자기에 쌌다. 그날 나와 같이 온 보퉁이는 옷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어머니가 보고 싶은 날에 품에 안아보면 어머니의 다정한 음성이 들린다. 젊은 날 입었던 한복을 입고는 환하게 웃으시며 '늘 너를 지켜보고 있다. 아직도 내 치마폭이 그립냐'며 물으신다. 나는 매번 차랑멀었다고 응석을 부린다. 보자기는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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