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7편] 뭘 좀 아는 놈
한번 물꼬를 튼 게 힘들지 다음부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은퇴 무렵엔 발칸반도의 아드리해 지역, 크로아티아에 가서 한 달쯤 푹 쉬고 올 계획도 세워두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은퇴하며 다녀온 크로아티아 여행담에 푹 빠진 이후로 그곳을 리스트에 넣었다.
안 가본 곳 두루두루 점 찍고 오는 깃발 관광 말고,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푹 쉬며 내면의 자신을 만나는 테마기행을 하기로.
Hellen의 빨래방 가게(Laundromat)가 겨울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댄다. 비 오는 뉴질랜드 겨울, 7~8월은 빨래방의 성수기라 쉴 새 없다. 연거푸 들어서는 주민들, 쌀가마니만한 검정 비닐 백을 등에서 내려놓는다. 사모안, 피지, 통아, 섬나라 사람들이 많이 사는 오클랜드 남쪽, 오타후후. Hellen이 남편과 이곳에서 빨래방 일을 시작한지 벌써 7년째다. 천정 벽에 설치한 TV 화면에서 신바람 나는 춤과 노래 동영상이 칙칙한 가게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실내공기가 갓 마른 빨래처럼 뽀송뽀송하다. ‘강남스타일’의 흥겨운 말 춤과 노래가 계속 반복되어 나온다. 들어서는 사람들의 흥청거리는 발걸음에 웃음이 절로 난다. Hellen도 빨랫감을 드럼통에 집어넣고 꺼내면서 어깨를 들썩거린다. 싸이가 직접 부르며 춤추던 화면이 끝나고 새로운 영상이 이어진다. 밤무대를 연상시키는 크루즈 선, 사교 홀에서 찍은 노래 동영상이다. 그 노래 역시 ‘강남스타일’이다.
“ 와우~주인마님 Hellen이 직접 노래 부르네! 오오~ 남편 Justin도 함께 춤추고! 당신들, 가수 맞아?”
단골 사모안 젊은이가 화면을 가리키며 환호를 한다. Hellen이 사모안 젊은이의 빨래 짐 보따리를 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나 서울에서 여고 음악 교사를 했거든. Justin은 기타리스트로 활동했고.”
이어서 크루즈 선에서 그 노래를 부르던 때를 상기하며 Hellen이 말 춤을 춘다. 어리둥절한 듯 쳐다보던 사모안 젊은이도 함께 말 춤 흉내를 낸다. 지난여름 11월. 3박 4일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후 Hellen 부부의 빨래방이 더욱 생기 넘치고 바빠졌다. 공간이 달라졌다. 새로운 활력이 빨래방에 접목된 연유일까. Hellen 마음의 추억 공간이 꽉 찬 느낌인 데다, 현재 일터 공간도 톡톡 튄다.
***
Hellen이 자주 만나는 오클랜드 띠동갑 모임, 다섯이 남편들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건 대이변이었다. 다들 일벌레(Workaholic)로 자기 일 속에 묻혀 산 세월이었다. 결단을 내린 후, 떼어둔 시간과 오붓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 신비로웠다. 뉴질랜드 이민 와서 다들 애쓰며 살아왔다. 빨래방, 차량 세차, 런치바, 학교청소, 달러샵 일에 매달려 5년 이상씩 일해오던 터였다. 한 부부가 함께하는 파트너 비즈니스로서 3박 4일을 모두 떼어내기란 힘들었다. 한번 물꼬를 튼 게 힘들지 다음부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은퇴 무렵엔 발칸반도의 아드리해 지역, 크로아티아에 가서 한 달쯤 푹 쉬고 올 계획도 세워두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은퇴하며 다녀온 크로아티아 여행담에 푹 빠진 이후로 그곳을 리스트에 넣었다. 안 가본 곳 두루두루 점 찍고 오는 깃발 관광 말고,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푹 쉬며 내면의 자신을 만나는 테마기행을 하기로.
원래는 여섯이 함께했는데, 기념품점을 운영했던 한 부부는 작년에 한국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췌장암으로 치료 차 들어갔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십 년 이상을 가게 일을 해오며 과로로 힘들어했다. 띠동갑 모임에 일대 멘붕이 왔다. 세상에 그럴 수가 있나? 아이들 교육 다 끝나고 독립할 즈음에 본인들의 몸은 무너져가는 줄 몰랐던 것. 남의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다 커서 부모 품을 떠난 나이대다. 이제부턴 자신들을 챙기는 것,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접한 뒤, 띠동갑 모임은 모임 성격을 180도 바꿨다. 공간 여행을 하기로했다. 서로 만장일치가 된 게, 1년에 한번씩 함께 좀 길게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
작년 여름이 바로 그 실천 모임, 크루즈 맞보기 여행이었다. 금요일 오후 오클랜드항구를 출발해서 월요일 오전에 돌아오는 3박 4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어지간한 결단이 아니고선 힘들었다. 결과는 함박웃음이 번진 얼굴로 오클랜드 항구에 돌아왔다. 흐뭇한 시간, 대만족이었다.
Hellen의 띠동갑 다섯의 하나같은 공감은, 남이 해주는 밥을 우선으로 꼽았다. 하루 연속 세끼에 중간 간식에 음료까지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운동도 하고 구경하고 관람하고… . 모처럼 함께 보내는 것이 그렇게 의미 있는지 몰랐다. 크루즈 선에서의 밤 행사는 환상적이었다. 2,000여 명이 승선한 승객들이 함께 만드는 축제였다. 축제의 첫날 밤은 사교춤 배워 함께 즐기는 시간이었다. 둘째 날 밤은 Gatsby Party로 화려한 의상과 가발 모자 목도리를 한 채 축제의 밤을 보냈다. 셋째 날 밤은 자유롭게 노래 부르는 축제 무대였다. 노래 제목을 입력하면 성능 좋은 연주 음악 기기에서 신나고 흥겨운 반주가 흘러나왔다. 뉴질랜드 키위가 먼저 ‘맘마미아’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열기가 후끈했다. 맘마미아 영화의 뮤지컬처럼 들썩였다. 다음은 프랑스인이 ‘사랑과 영혼’을 불렀다. 부드러운 부르스 춤을 부부간에 추며 빨려 들어갔다.
세 번째 마이크는 한국인 대표로 Hellen이 잡았다. 귀에 익숙한 음원, 비트성 강한 반주가 터져 나오면서 온 승객들이 무대로 뛰어나왔다. ‘Gangnam Style!’이었다. 한때 전 세계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사이의 강남스타일이 그리도 인기가 많은 줄 몰랐다. Hellen이 익살스럽게 말 춤을 추며 빠른 곡을 신나게 불러댔다. 왕년에 한 가닥 했던 가수 같았다. 키위 남성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Hellen을 에워쌌다. 농염한 포즈까지 취하며 귀엽고 깜찍하다는 듯이 Hellen을 치켜세웠다. 그 날 밤 노래 춤 축제에선 Hellen이 신데렐라로 등극했다. 얼굴과 목에 환희의 땀이 흘렀다. 세상에 다시 없을 그 공간, 그 시간에 푹 빠져든 것이었다. 함께한 띠동갑 부부들도 노래와 춤의 극치를 맛보았다.
그 노래와 춤, 동영상을 한 친구가 찍었다. 여행 마치고 돌아와 빨래방 TV에도 그 동영상을 연결해 틀었다. 빨래방에 들어오는 빨래방 손님들이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워주었다. “Champion!”
졸지에 Hellen은 유명인사가 되었다. 자주 그 동영상을 반복해서 나오게 틀어주었다. 빨래방 손님들의 발길이 많아졌다. 그 뒤, 빨래방 간판을 ‘Gangnam Style’ 로 바꿔 달았다. 일터가 자연스레 즐거운 놀이터로 되었다.
초기 그 빨래방을 인수하고는 얼마나 해프닝이 많았던가? 겨울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어느 날. 점심 끼니를 넘긴 채 일하다 남편이 건너편 Fish & Chip에 주문한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 사달이 났다. Hellen이 급한 볼일로 화장실에 갔을 때, 섬나라 젊은이가 돈 통을 들고 튀었다. 그런 뒤로 시큐리티 CCTV를 설치했다. 알게 모르게 경계의 눈으로 손님을 대하게 되자 표정이 굳어갔고, 손님들도 이를 눈치챘는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불행의 악순환이 계속 이어졌다. Hellen 가게 옆의 옆 건물에 중국 사람이 Hellen 가게보다 더 크게 빨래방을 차려 24 Hours & 7 Days로 오픈 했다. 가격도 더 싸게 제시했다. 매출타격이 바로 반영되었다. 그동안 일주일에 6일 일하고 월요일 하루는 쉬었는데 그마저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제살깎아먹기 경쟁에 계속 끌려다닐 수도 없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 무렵,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할 때, CCTV 대신 TV를 설치했다. 흥겹고 신나는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Gangnam Style을 연결해 틀었다.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Hellen이 싸이를 따라서 노래와 말 춤을 추었다. 가게 분위기가 살아나며 손님들도 모여들었다. 교민식품점에서 폭탄 세일하는 초코파이를 큰 박스 채 사다가 풀기도 했다. 춤 잘 추고 잘 따라 하면 선물로 하나씩 주었다. 한국 달러샵에서 어린이용 물품도 대거 반입했다. 어린아이에게 고루 나눠주었다. 밝고 환한 얼굴로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대했다. 손님 각자의 집안 대소사까지 꿰며 온정어린 관심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니 다들 좋아했다. 작은 것 하나가 누룩이 되어 빵을 크고 맛있게 부풀렸다. 크루즈에서 Hellen이 노래기기 화면 보지 않고 18번처럼 잘 부른 강남스타일! 맛깔스럽고도 깜찍하게 춤과 노래를 선보였던 그 원동력은 평소 가게에서 손님들과 함께하며 다져진 실력이었다. 그 날 밤 Champion! 으로 등극까지 했으니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다.
***
다시, 일상 일터 빨래방에서 그 기쁨과 감사를 손님들과 더불어 나눈다. 중독성 강한 비트 음이 가게에 울려 퍼진다. 선순환의 물꼬가 터져 가게에 흐른다.
~오빤 강남 스타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Eh~ Sex Lady~
~오오오오~
~나는 뭘 좀 아는 놈!!! *
# Lynn :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