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손바닥 소설 [11편] George
스카이시티에서 팔등신 미인이 제 택시에 타 부렀어라. 어디 가냐 물으니 대뜸 한다는 말이 <18 죠지스트리트!!!>(18 George Street) 그래요. 눈을 흘겨봤지라. 영국에서 온 미년데. 우째 그렇게 노골적으로 발음을 한다요. 다시 물었지라. 어떤 죠지 스트리트냐, 오클랜드에는 죠지스트리트가 여러 개 있다. 가까이는 파넬 죠지, 아래로는 엡섬 죠지,
저 북쪽 멀리는 오레와 죠지가 있는데. 빨리 고르더라구요. <파넬 죠지!!!>라 외치더라고요. 파넬 18 죠지스트리트 가서 내려줬지라. 근데 그 미녀 안 내려라.
이 죠지가 아니다 딴 죠지있냐고 물어요. 어따, 딴 죠지라?
주말마다 갖는 트램핑, 오늘은 보타닉 가든에서 집결해 후누아 폭포에 다녀왔다. 씻김굿 같은 신명 난 트램핑 모임이 벌써 10주년을 맞았다. 몸풀기 정도로 트램핑을 마치고 축하잔치 모임을 할 차례였다. 행사를 준비 중인 회원들의 몸가짐이 바빴다. 회장인 J의 차에서 꺼낸 짐들이 풍성했다. N과 M이 거들어 밥통과 반찬 음료수 박스를 꺼내 옮겼다. N과 M은 중 고참 회원으로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는 부부다. 한국에서 레크레이션 강사로 일한 적이 있어 분위기 만들고 띄우기에는 고수들이다. 오늘 트램핑 모임에 참석한 회원이 무려 스무 명이다. 마흔다섯부터 여든까지의 연령대가 다 모였다. 여든 되는 K는 이 모임의 고문이다. 그 아내 되는 L은 대모 역할을 해오고 있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보타닉 가든 레저룸에 펼쳐놓았다. 점심 밥상을 함께 차려 맛있게 먹었다. 룸 주방에서 구워낸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도 나름 주요 메뉴가 됐다. Y가 준비한 뉴질랜드 트램핑 클럽 1년 행사 사진과 동영상을 홀 앞쪽 흰 벽에 쏘아 올리니 분위기가 고조됐다. 경쾌한 음악까지 곁들여 펼쳐지는 동영상이 입맛을 돋웠다.
뷔페식으로 음식을 차려서 맘대로 음식을 갖다 먹다 보니, 자리 이동도 저절로 됐다. 이 식탁 저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옆 사람과 환담도 했다. 진저비어 음료수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소주가 없더라도 낮에 진저비어 정도면 그런대로 입가심에 좋았다. 고국에 막걸리를 마시는 느낌처럼 속이 든든했다.
집을 나와 회원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자 신명 나는 2부가 대기하고 있었다. N과 M의 사회로 시작된 게임과 개인기 발표가 분위기를 띄웠다. 다섯 명씩 네 팀으로 나눠 팀 홍보 발표, 퀴즈 쇼, 율동발표까지 흥겹게 이어졌다. 마치 어린애들 소풍 가서 보물찾기 전에 하는 유희 게임 같았다. 마지막으로 각 팀 코미디 개그 이야기 발표시간이 가장 흥미로웠다. 가장 많이 웃기는 팀에게 부상이 주어졌다. 네 팀 중 내 둬유 팀은 기권하고 세 팀이 우스운 이야기를 발표했다. 막가네 팀, 거시기 팀, 나 몰라 팀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토크쇼의 소재가 기상천외했다.
먼저 막가네 팀 대표로 나선 S가 나타나 넙죽 절을 했다.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주변 지리를 잘 모를 당시 경찰한테 걸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두 가족이 지도를 보고 남들이 추천한 북쪽 푸호이로 가는 중이었어요. 오레와를 지나는데 경찰이 잡는 거예요. 왜 그리 속도위반을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급하게!> 갈 곳이 있어서 그랬다고 했어요. 경찰이 그 말을 듣더니 정색하고 말을 받더라고요. 그럼 나도 <급하게!> 벌금 티켓을 끊어주겠다. 바로 티켓을 끊더라고요. 뒤따라오는 차가 내 차 뒤에 서 있는 걸 보고, 경찰이 그 차에 가서 묻더라고요. 너도 앞차와 같은 속도로 운전했냐? 뒤차 운전사는 그때,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친구였어요. 영문도 모른 채 넙죽 대답하더라고요. 예써! 경찰이 또 물어봤어요. 너도 <급하게!>가는 중이냐? 그 친구 대답 하나는 씩씩하게 잘 했어요. 예써! 경찰 대답이 가관이었어요. 그럼 너도 <급하게!> 딱지를 끊어 주겠다. 뒤차는 그야말로 졸지에 비싼 벌금 딱지 90불짜리를 받아들고 와서 나보고 뭐냐고 묻더라고요. 너무 웃겨 킥킥대는 나를 보더니 잘한 거냬요. 그 날 배꼽이 빠진 줄 알았어요. 그 친구, 요즘 주차위반 딱지 끊는 주차 단속 요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딱지에 무슨 원한이 쌓였는지, 원. 세상은 요지경이지요.”
S 이야기에 사회자 N(M 남편, 나대로)이 배를 잡고 하도 웃어서 사회를 못 볼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회원들의 웃음소리로 엔도르핀이 솟아 넘쳐났다.
거시기 팀 H가 이야기 바톤을 거머쥐었다. H 역시 만담가 수준이었다. 웃음기가 퍼졌다.
“오클랜드에서 한국 가는 비행기를 탔지요. 중국 북경 경유 2박 3일 추가 여행을 하면서 배꼽이 떨어졌어요. 북경 만리장성, 이화원, 천안문 광장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연변 가이드가 농담과 야한 이야기를 진하게 늘어놓는데 웃다가 볼일 못 봤어요. 그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에 모두 빨려 들어갔지요-중국에서는 나이가 좀 든 연배나 선배를 만나면 <따거!>라 불러요. <형> 정도로 생각하면 돼요. 중국 왔으니 이 말 하나는 꼭 기억하고 배워가세요. 먼저 이 버스에 탄 몇 분의 성을 물어볼게요. 제가 지명하면 성만 대세요. 그럼 다른 분은 성 뒤에 따거를 붙여 복창하는 겁니다. 저분, 장! 따거! 뒤 분, 이! 따거! 그 옆에 분, 오! 따거! 아직 재미난 성이 안 나왔네요. 맨 뒤분, 등! 따거! 그래요. 이제 나오네요. 옆에 분, 손! 따거! 뉴질랜드 가이드분, 목! 따거!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위해 수고하시는 버스 운전사님, 조! <따거!!>- H의 야그는 안타를 친 거였지요.”
여성 사회자 M(N 아내, 맘대로)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킥킥대는 그 모습이 더 웃음을 진폭시켰다. 오랜만에 엔도르핀보다 몇 배나 센 바이돌핀이 확 돌았다.
나 몰라 팀에 Z가 마지막 주자로 머리에 빨간 띠까지 매고 두 손을 흔들며 나왔다.
“지는요, 오클랜드 택시 운전하며 별별 꼴을 다봤어라. 그중 하나 깔게요. 재미있으면 박수, 웃겨 죽겠으면 앞사람 등을 동네 북 치듯 쳐 부러요. 알겠지라. 자 그라믄 깝니데이. 스카이시티에서 팔등신 미인이 제 택시에 타부렀어라. 어디 가냐 물으니 대뜸 한다는 말이 <18 죠지스트리트!!!>(18 George Street) 그래요. 눈을 흘겨봤지라. 영국에서 온 미년데. 우째 그렇게 노골적으로 발음을 한다요. 다시 물었지라. 어떤 죠지 스트리트냐, 오클랜드에는 죠지스트리트가 여러 개 있다. 가까이는 파넬 죠지, 아래로는 엡섬 죠지, 저 북쪽 멀리는 오레와 죠지가 있는데. 빨리 고르더라구요.<파넬 죠지!!!>라 외치더라고요. 파넬 18 죠지스트리트 가서 내려줬지라. 근데 그 미녀 안 내려라. 이 죠지가 아니다 딴 죠지있냐고 물어요. 어따, 딴 죠지라? 응. 쟈지스트리드(Judge Street)가 있다 하니 그리로 가재요. 그리로 갔지요. 다 왔다 하니, 그 쟈지도 아니래요. 또 다른 죠지가 있냬요. 한참 그 미녀를 쳐다보다 겨우 이야기했지우. 딱 남은 마지막 죠지 스트리트 비슷한 게 있다. 그 이름은 세인트 죠지(Saint Georges Bay Road)다. 가 볼 거냐. 고개를 끄덕이더라구요. 서둘러 갔지라. 아, 거기 맞대요. 파넬에 죠지 비슷한 이름이 셋이나 된당게요. 겨우 찾았지라. 미녀와 죠지 스트리트!!! 전 그 다음 달, 호주 시드니 다니러 갔다가 그만 졸도하고 말았어라. 세상에 그렇게 큰 것은 처음 봤당게요. 거기 가니 엄청 큰 죠지스트리트가 있더라구요. 그 이름앞에 King이 붙더랑게요. 이름하여 <King George Street!!!> 크기가 오클랜드 파넬 죠지 스트리트와는 비교가 안돼 부렀지라. 무려 8차선 도로 더라구요.”
N과 M이 마이크를 부여잡고 웃어대느라 홀 천장이 들썩했다. 특히나 M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허리를 굽히고 배꼽을 잡았다. 회원들이 앞에 앉은 다른 회원 등을 동네북처럼 힘차게 두드렸다. 열기는 옆으로 퍼져나가 덩달아 웃느라 혼이 빠지는 줄도 몰랐다. 야구장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이었다. 정말 죽어도 좋아하는 수준인 다이돌핀이 온 홀을 진동시켰다.
시상식에서 폭소 대상은 <죠지스트리트!!!>로 홈런을 친 Z가 받았다. 회장인 J가 부상으로 캘리포니아 산 쌀 10kg짜리를 Z 등에 얹혀주었다. “미녀 그만 놀리셔!” 멘트에 모두 박수를 쳤다. 금상은 조! <따거!!>로 안타를 친 H에게 돌아갔다. 대모 역할을 하는 L이 부상으로 설거지 타올 수세미와 부엌 용품 세트를 H 손에 얹어주며 외쳤다. “잘 따꺼!!” 까르르 웃음소리가 또 울려 퍼졌다. 은상은 <급하게!>로 해프닝을 했던 H 몫이었다. 이 모임의 고문이신 K 어른이 큰 뭉치의 화장지세트를 부상으로 주었다. “천천히!” 당부 말에 회원들이 복창했다. “천천히!”
시상식 뒤에서 아직도 M이 맘대로 킥킥대며 가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M은 어떤 이야기에 아직도 사로잡혀 웃고 있는 걸까? 감성과 상상력이 풍부한 M이라면 세 이야기를 요리조리 조합해 혼자 삼키려 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를테면 이렇게도.
‘조! <따거>!!가 <급하게!><죠지스트리트!!!> 아니 <킹 죠지스트리트!!!>를 달려가는 꿈을 꾸지나 않을까?’ 맘대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재미난 성을 쌓으며 웃고 살아가는 일, 그래서 닉네임이 맘대로 아닌가. 뉴질랜드 100배로 즐기며 살아가는 방법이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
LYNN : 소설가. 오클랜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