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지 빠진 수탉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26> 꽁지 빠진 수탉

오문회 0 1990

나이 사십 대에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택시 운전을 해온 지 십 년째 되던 날이었다. 택시 기사에게는 가장 바쁜 금요일 오후, 공항 가는 여성을 태웠다. 오클랜드에 출장 차 왔다가 시드니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시내를 벗어나 공항 방향 큰길로 들어서자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다. 다소 신경이 쓰였다. 얼마 지나지 않자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려지면서 접촉 사고 차량으로 길이 막혀갔다.

겨우 공항 가는 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 길이 뚫리려나 하며 속도를 높이려는 순간이었다. 앞서 가던 차량이 갑자기 급정지를 하였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가까스로 앞차 꽁무니에 거의 맞닿은 채 내 차가 멈춰 섰다. 안도의 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하며 육중하게 들이 바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뒤따르던 소형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그만 내 차 꽁무니를 받아버렸다. 뒷 차는 보닛이 활처럼 휘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녹색의 냉각수가 줄줄 흘러내렸다. 내 차는 뒷 범퍼가 밀려 뒤틀린 채 간신히 붙어 있었다.

옆에 탄 여자 손님은 얼이 빠져 말도 못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 그저 발만 동동 굴렀다. 하는 수없이 재빨리 양쪽 차 인적 사항을 적어 나눠 가졌다. 너덜거리는 범퍼를 임시로 얽어맨 채 출발하는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나 때문에 비행기를 놓친다는 건 내 사전에 없었으니까 더욱 서둘렀다.

그나마 공항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길이 시원하게 뚫렸다. 속도를 올리자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상향등을 번쩍이며 경적을 울려댔다. 불안한 마음에 속도를 줄여 가며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뒷 범퍼가 털털거리며 땅에 끌리기 직전이었다. 그대로 달렸다가는 뒷 범퍼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뒤따르는 차에 더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게 뻔했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범퍼를 분리했다. 매연이 묻은 뒷 범퍼를 떼어내다보니 양손이 까맣게 범벅이 되었다. 머리와 옷이 몽땅 젖어갔다. 안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시야가 뿌옇게 앞을 가렸다. 손님이 안절부절못한 눈치였다. 떼어낸 범퍼를 고속도로 펜스 너머로 던져 놓았다. 안경알의 물을 닦으며 차에 올랐다. 다시 출발 페달을 밟았다.

멀리 보이는 국제선 청사가 마라톤 결승점으로 보였다. 질주하듯 달렸다. 옆에 탄 손님이 계속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걱정 섞인 손님의 숨소리에 가슴이 옥죄어갔다. 온몸이 후끈거렸다. 차를 청사 앞에 대고 트렁크에서 짐을 내렸다. 곧바로 트롤리에 짐을 실어 손님 손에 바통 넘기듯 건네주었다. 손님은 요금을 내던지고서 허겁지겁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비행기 시간에 늦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휴우… 겨우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택시는 꽁지 빠진 수탉이었다. 내 모습은 물에 빠진 생쥐였다. 다시 고속도로로 달려갔다. 던져놓은 범퍼를 찾아 트렁크에 싣고 끈으로 매었다. 일터가 아닌 정비 공장으로 달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최선을 다하라는 프로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2주일쯤 지난 어느 날, 집으로 퇴근해서 보니 웬 편지 한 통이 와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비행시간에 맞춰준 것에 감사한다는 손님의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여성 손님의 편지를 받은 회사에서 나에게 보낸 격려 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이 최선의 자세로 택시손님을 돌본 것이 자랑스럽다. 덕분에 우리 회사는 50년 이상 정상의 자리에서 오늘을 지키고 있다. 이 기록은 당신 파일에 보관하겠다. 안전 운행 속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2014년 6월 제 9회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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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021.272.4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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