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34>파도

오문회 0 2212

지난주, 둘째 딸내미 학교에서 온 이메일 중 특이한 게 있었다. 새 학년 100일을 기념해 점심을 나눠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사탕이나 초콜릿 등은 피해서 건강한 음식으로 무엇이든 100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머핀이나 쿠키, 스시를 예로 들었다.

아이는 대뜸 스시를 골랐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어로만 해 달라고 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간식으로 사 주었더니 스시를 비스킷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문제없다는 듯 평소대로 쉽게 대답했다.

‘월요일 오전에 좀 바쁘겠지’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료를 한 가지만 넣어 작게 만들면 먹기 좋을 테고, 연어로 만드는 백 알의 스시보다 달걀이나 아보카도로 색도 맞추고 장식만 잘 해주면 좋아하겠지, 하고 상상하니 괜히 마음마저 흐뭇해졌다.

주말에 아이와 다른 볼 일이 있어 쇼핑몰에 갔다가 화려하게 진열된 스시 가게를 지나면서 그동안 그려 온 그림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타협을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월요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싱싱한 연어를 사러 생선가게에 갈 일이 번거로울 게 분명했다. 아니면 훈제연어를 사두었다가 재료로 써야 할 텐데 그것도 마땅치 않게 여겨졌다. 귀차니스트에다 융통성 없는 내 처지에는 소라처럼 집에 박혀 사는 게 천국이자 극락이다.

스시 가게에 들러 매니저쯤으로 보이는 사람을 만나 많이 사면 할인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같은 한국인에다 평소에도 손님이었으니 은근히 깎아주기를 기대하며 자주 사러 오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매니저는 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선심이라도 쓰듯 5달러 정도는 깎아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뭐하러 주문해? 그냥 많이 사다가 큰 접시에 담는 셈인데…’

성의 없는 대답에 자존심이 상했다. ‘키위들에게 스시 백 개를 팔려면 얼마나 힘들 텐데…’하는 마음에 그가 바보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안일함과 게으름은 제쳐 두고 남의 일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좀 더 생각해보고 연락하겠다며 전화번호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뒤 주말 내내 갈등했다. 남편이 힘들여 벌어 온 돈을 쉽게 쓰지 않는가 하는 미안함과 아이에게 사주는 예쁜 구두나 장난감보다 즐거운 추억을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라는 합리화된 혼돈이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월요일 아침까지 그날 나눠 먹을 점심을 고민했다. 한 주일이 시작된 만큼 몸은 부엌으로, 세탁실로, 욕실로 바쁘게 다니면서도 시간에 맞게 전화로 답을 주려고 시계를 힐끔거렸다. 점심시간에 스시 100알 대신 체리 토마토 100개를 사다 주기로 하고 마음을 굳게 먹은 나는 다음에 주문하겠다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했지만, 막상 전화해서는 안 깎아줘도 되니까 예쁘게나 해달라며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나의 참모습일지도 몰랐다. 자기 그림자에 놀라 잠시 쉬는 동안 난데없이 아무 관계도 없는 김형욱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한때 월간지를 열심히 읽은 탓이다. 한꺼번에 백 개의 스시를 주문하는 통 큰 꼴이 왠지 허하고 처량한 타향살이를 하던 김형욱의 초라한 객기와 닮은 것 같았다. 장미 백 송이를 사 들고 여자 친구에게 환심을 사려는 젊은 남자들의 치기이든지.

후회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아이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색깔을 맞춰 장식을 잘해달라고 전화 주문을 하고 가게에서 스시를 만드는 동안 나는 파티 팩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 몸을 움직일 때 햇살에 보이는 공기 속의 먼지 같은 잡념이 멈춰 좋았다.

점심시간에 스시 상자를 들고 온 엄마를 보고 환하게 웃는 아이의 미소와 마주친 순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작지만 쉼 없던 마음속의 소요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며칠 동안 우왕좌왕하면서 부모는 아이에게 마술을 부리는 요정이 되거나, 슈퍼맨같이 날아가는 힘을 가지고 싶은 걸까 궁금해졌다.

당혹하리만치 적나라한 치부를 드러내어 다시 읽을 용기를 잃은 소설, 박민규의 '누런 강 배 한 척'의 초췌한 아버지처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입은 옷 하나씩 다 벗어주는 부모, 어차피 무덤 외에 갈 길이 없는 우리들의 외길 인생에 속도를 내는 아버지, 무엇도 감출 수 없고 감춰주지 않는 잔인한 작가, 누가 나는 아니라고 대들 수 있는 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은 뗄 수 없는 듯 소중해지지만 실은 나와 남이 제일 먼저 시작되는 곳은 가족이며, 상처를 제일 먼저 주고받는 곳은 가정이며, 나와 남을 구분하지 못할 때 고통은 시작된다는 평소의 생각이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 같았다. 단지,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무엇이든 기대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심이 물거품을 보이며 허를 드러냈다.

운무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021.272.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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