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의 유쾌한 수다

손바닥소설


 

네 남자의 유쾌한 수다

오문회 0 2692
지난 해 유월,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교민 한 분이 찾아왔다. 문학회 모임을 하나 만들자고 했다. 문학에 관심이 많은 줄은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열정이 깊은 줄은 미처 몰랐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미국 교포 사회는 물론 이웃 나라 호주의 시드니에도 있고, 또 비행기로 고작 한 시간 떨어져 있는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에도 있는데 뉴질랜드 문화 행정의 중심도시라는 오클랜드에 없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오클랜드’하면, 지구 상 어느 동포 사회 부럽지 않을 만큼의 가방끈 길이들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던가. 아무렴, 문학회 같은 고상한 단체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뜻있는 사람끼리 모여 한번 만들어 봅시다.”

다음 날부터 회원 모집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재외동포문학상에 한 번이라도 응모한 교민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선 여부를 떠나 문학에 관심과 열정만 있다면 충분히 회원 자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십여 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 중 서너 명과 최종 연락이 됐다. 간단하게 취지를 설명한 뒤, 한자리에 모여 심도 깊게 얘기해 보자고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각자 성격도, 종교도, 직업도 다른 네 명이 모였다. 오십 지천명을 눈 앞에 둔 둘, 또 그를 넘겨 가운데에 있는 둘, 그렇게 네 명의 중년 남자가 자리를 같이 했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되어 자연스럽게 의기투합됐다. “해 보십시다.” 문학회 이름이 정해졌다. 오클랜드문학회, 줄여서 ‘오문회’로 하기로 뜻을 모았다. 네 명의 나이든 문청들. 우리는 ‘오클랜드 교민 사회에 르네상스를 여는 네 기둥’이라고 자칭했다. 먹고 살기도 버거운 이민 사회에서 좀 색다른 꿈을 꾸는, 어쩌면 현실 생활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별종들 인지도 모른다.
 
택시 기사 백 선생.
오클랜드에서 열다섯 해가 넘게 택시를 몰고 있다. ‘택시 창에서 바라본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교민 신문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오십 대 중반이지만, 그의 마음은 십 대 청소년 마냥 언제나 푸릇푸릇하다. 힘이 닿는 한 남을 도와주려 하고, 돈 안 되는 일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서슴없이 시간을 내고 있다.
맛깔스런 글 속에 정이 살아 있고 시골 할머니 같은 재담 실력도 갖고 있다. 취미는 등산, 아내 사랑이 때로는 지나쳐 보여 회원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수필을 즐겨 쓴다.
 
변호사 최 선생.
무엇보다 스펙이 장난이 아니다. 한국 최고 대학 출신에다 박사 학위까지. 문학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물리학 전공자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뉴질랜드에 온 뒤에도 불혹이 넘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해, 그 어렵다는 법대를 나와 현재는 변호사를 하고 있다.
시간만 나면 담요 하나에다 메모지 몇 장을 들고 바닷가로 나가 상념에 빠지곤 한다. 취미는 여행, 아내 사랑도 백 선생 못지 않아 보이는데 정작 본인은 아니라고 한다. 시를 쓰고 있다.
 
백수 작가 김 선생.
김 선생은 밤낮이 바뀐 사람이다. 밤을 패가며 글만 쓰거나, 때로는 필사만 하다가 그칠 때도 많다, 새벽녘에 들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면도칼 같은 섬뜩한 문장 때문에 김훈을 좋아한다고 한다. 조만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칠 년 뒤 –김훈과 나이 차이가 딱 그만큼 난다- 김훈 같은 작가가 또 나올지도 모른다.
 취미는 내가 아는 한, 없다. 늦깎이 소설가로서 빚진 시간을 벌충해야 한다고 믿어서이다. 그의 아내는 저녁에 같이 자고 아침에 같이 일어나고 싶어한다.
 
책방 주인 박 선생, 나.
책 이만 권을 읽은, 아니 어쩌면 그냥 소장만 했던 사람이다. 대학 시절부터 책을 좋아해 책 관련 일을 오랫동안 해 왔으며, 교민 사회에서 책 전도사로 불린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장서를 부러워하지만 동시에 그의 무식을 의아해 하기도 한다. 젊은 날 일 년간 세계 여행을 한 경험을 훈장인 양 자랑하고 다닌다.
그의 아내는 책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책을 안 샀다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 및 여행 르포에 관심이 많다.
 
문학회 모임은 격주로 수요일 저녁에 열린다.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한 뒤, 본격적인 모임을 시작한다. 우리는 이 모임을 ‘네 남자의 유쾌한 수다 시간’이라 부른다. 보통 남자들의 수다는 경제(돈), 정치, 스포츠가 주를 이루지만 우리 모임은 이를 가급적 배제한다. 한두 시간 만이라도 그 틀에서 자유로워 보자는 뜻이다. 물론 더러 아내 흉을 보기는 한다. 하지만 그 흉 역시 문학 작품으로 승화해 낼 수 있다는 이심전심 때문에 누구도 반감을 갖지 않는다. 어쩌면 모임 시간 중 가장 ‘유쾌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모임의 백미는 합평이다. 두 주 동안 써 온 작품 중 한두 편을 골라 서로 의견을 나눈다. 이 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수시로 감돈다. 다들 제 딴에는 ‘한 작품’씩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사정없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뭘 알고 깨지거나, 알면서 깨뜨리면 좀 덜 섭섭할 텐데 서로 오십보백보 처지에 입술에 침을 발라 가며 성토를 해대니 그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저 그런가 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시를 쓰는 최 선생이 담배 연기를 소재로 시를 한 편 써 왔다. 시를 써 온 본인이나 시를 읽고 온 회원들이나 시에 대해 잘 모르기는 피차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합평을 할 때 보면 여느 문학평론가 못지 않다. 형상화가 어떻느니, 단어 선택이 적확하지 않느니 하며 말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시를 모르는 우리들이 애꿎은 시를 잡고 있는 셈이다.

시뿐만이 아니다. 수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백 선생이 잠을 설쳐가며 수필 한 편을 써 온 어느 날. 미리 원고를 받아 읽어 본 나머지 회원들과 합평에 들어간다. 나름대로 자기 의견을 한마디씩 토해낸다. 어떻게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틀린 것 같기도 한데 딱히 변명도 옹호도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작품은 너덜너덜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혀 갈등이 없다. 그저 조금 밋밋할 뿐, 그리고 약간은 서로 덤덤할 뿐……. 누가 문학이 아름답다고 했는지 원망스러운 순간이다.
 
우리들의 수다는 회원 작품에 한하지 않는다. 얄팍한 지갑 가지고 허세를 떨듯 설익은 문재를 숨기지 못하고 유명 작가 작품에도 한 마디씩 토를 단다. 만약 문학 전문가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자알~~들 놀고 있네’라고 했을 것이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문단의 고수들이 하나 둘 문림 세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학회의 활성화를 위해 인터넷 카페를 열었는데, 소문을 듣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류했다. 순식간에 너도나도 ‘음메 기죽어’가 되어 버렸다. 대학원에서 시를 전공한 젊은 피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등단 작가, 그리고 문학비평가 실력의 회원까지 정말로 우리로서는 명함도 내놓을 수 없는 수준급 회원들이 동참했다.

그렇다고 기가 죽으면 늦깎이 문학도들의 체면이 말이 아닐 터. 차라리 잘 됐다, 그렇게 마음 먹었다.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우리 내친 김에 문학상 하나 거머쥡시다. 꼭 최우수작품이 아니라 가작이라도 당선된다면 성공한 것 아닐까요?”
 
문학회 모임을 시작한 지 어느덧 팔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작년 성탄절 무렵 한 두 차례 빼먹은 것을 제외하곤 꾸준히 제 날짜에 모임을 가져왔다. 돌이켜보건대 문학이 아니었다면, 아니 우리들만의 수다 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다들 그 힘든 시간을 버텨냈을까 싶다. 가슴 속 눈물을 애써 숨겨야만 했던 우리 네 남자들은 문학의 힘으로, 수다의 힘으로 말 못할 어려움을 버텨온 것이다.

바라기는 네 남자들만의 수다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교민 사회에 더 많은 수다쟁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먹고 살기가 팍팍해도 그래도 가끔씩은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아내 흉도 보고 그러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일은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내 작품, ‘네 남자들의 유쾌한 수다’에 대한 합평이 계획되어 있다. 미루어 짐작건대 엄청 깨질 일만 남았으리라.

“박 선생, ‘유쾌한 수다’라고 했는데, 글 어디에 ‘유쾌한’ 수다가 들어 있수? 제목만 가지고 퉁칠 생각이요?”
“박 선생님, 내가 언제 그렇게 아내 자랑을 했지요? 왜 나만 팔불출로 만들어 놨어요. 아무리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편하게 쓰는 게 수필이라지만 정말로 그렇게 써도 되는 건가요?”
 
그때를 대비해 내 나름대로의 답변도 미리 준비해 놓았다.
 “어차피 당선도 안 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응모할 수필은 마감 내 써야겠고, 실력은 안 되어도 매수는 채워야 하니까 그냥 꾸역꾸역 만들어 낸 거에요. 저, 이번에 수필 쓰면서 정말로 글 쓰는 사람 존경하게 됐어요. 원고지 이십 매 쓰느라 밤을 샜다니까요. 겨우 이십 매인데…….”
 
아, 누가 수다를 여자의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첫사랑의 키스보다 더 짜릿한 이 수다를.

시인과나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 021 272 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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