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향기를 나누며 5> 내 친구 똥운이
비오다 그친날, 슬레이트집을 지나다가
얼굴에 검버섯 핀 아버지의 냄새를 맡는다
양철 바케쓰에 조개탄을 담아 양손에 쥐고 오르던 길
잘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언 손으로 얼굴 감싸쥐어도
겨울 새벽은 쉬 밝아오지 않고
막 피워낸 난로 속 불꽃은 왜 그리 눈을 맵게 하던지
닫힌 문 작은 구멍마다 차가운 열쇠를 들이 밀면
낡은 내복 속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 뜨겁게 흘러 내렸다
한달치 봉급을 들고 아들이 돌아오면
아버지는 마른 정강이를 이끌고 해장국집으로 갔다
푹 들어간 눈 속으로 탕 한 그릇씩 퍼 담던 오후
길 끝 당산나무에 하늘 높이 가슴 치는 매미 울음소리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껴안을수록 멀어지는 세상
우산도 없이 젖은 머리칼을 털며
서창 해장국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습기 찬 구름 한 덩이 닫힌 창밖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검버섯 핀 손등 위로 까맣게 아버지 홀로 걸어가신다
살다 허기지면 찾아가는 그 집
금빛 바늘처럼 날렵한 울음 사이로
까마귀 한 마리 잎을 흔들며 날아간다
전성호의 시, ‘서창, 해장국집’을 읽다가 갑자기 대학 친구 동운이가 데려갔던 그곳이 떠올랐다. 대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우리는 강의 사이의 빈 시간이 나거나, 결강이 되면 어김없이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날씨가 그림 같이 좋았던 그 날, 교수님의 개인적인 이유로 결강이 되었다. 앗싸! 하면서 같이 수업을 듣던 동운이와 종로 낙원상가 근처의 허리우드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노파심에서 그와 나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자면, 동운이는 ‘우연히’ 남자였을 뿐 남자 친구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때 본 영화 제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고 그런 코믹 액션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동운이는 자기가 잘 아는 밥집이 있다며 사 줄 테니 함께 가자고 했다. 걱정 말고 무조건 따라오면 된다며, 으슥하고 좁은 골목 사이로 성큼성큼 앞장서 갔다. 졸래졸래 뒤따라가다 동운이의 모습을 슬쩍 보니 어깨가 으쓱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뒤통수가 하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골목 길을 이리저리 한참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이 시에 나오는 것처럼 슬레이트 지붕의 허름한 해장국집이었다. 양은으로 된 둥근 탁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고, 다리가 세 개뿐인 등받이 없는 동그란 의자가 그 아래 몇 개 너부러져 있는 궁색해 보이는 식당이었다. 메뉴는 딱 하나, ‘해장국’.
콩나물 해장국이니 선지 해장국이니 우거지 해장국이니 하는 사치스런 선택 사항 없이 무조건 ‘해장국’인 집이었다. 가격은 1,300원. 그 당시 학교 앞 비엔나커피가 1,700원이었으니까 대충 짐작이 가리라 믿는다. 어쨌든 '우연히 남자인 친구 녀석'은 이 집이 원조라며 해장국 두 그릇을 시켰다. 건지는 몇 개 없는 멀겋고 뻘건 국물뿐이었지만, 맛있는 집이라 하니 음∼ 이런 게 원조 해장국 맛이구나 하며 단숨에 다 먹었다.
그 날 식당 안에 20대는 우리뿐이었고, 여자 손님도 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해장국집은 근처 파고다 공원에서 오는 사람들이 단골인, 그들의 허기진 배를 말없이 채워주던 그런 ‘특별한’ 곳이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읽다가 떠오른 이 '우연히 남자인 친구', 동운이의 별명은 신입생 때부터 ‘똥운이’였다. 경기도 대성리로 첫 MT를 가던 날, 이 친구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 일이 화장실로 직행한 것이었고, 아주 한~참 뒤에나 나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이 친구는 계~속 김똥운이 되었다. 학교에서 동운이를 보면 나는 가까이 있든 지 멀리 있든 지 언제나 “야! 김똥운!”하고 큰 소리로 부르곤 해서 동운이가 아주 진저리를 치곤 했었다.
그런 똥운이와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종종 같은 전철을 타곤 했는데, 어느 날 이 친구가 내게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자기가 벌써 스무 살이 넘었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애 취급한다며 이런저런 하소연을 했다. 며칠 전에는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데, 휴지를 손에 세 번 말아 썼다고 호통을 치셨다는 것이다.
말하는 똥운이의 표정이 어찌나 심각하던지 나는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버지도 장난 아니라고, 아버지들은 다들 어려운 시절을 보내셔서 그런 거라고, 우리가 이해하자고. 끄덕끄덕…….
동운이는 나하고 4년을 같은 전철을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소식이 끊어졌다. 다 내 탓이다. 외국에 산다고, 이제는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연락도 안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때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던 그 친구랑 다시 해장국 한 사발 먹고 싶다.
간서(看書)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이하 오문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