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고마워요, 엄마 땡큐
엄마 고마워요, 엄마 땡큐
"엄마 별일 없어요" 우리도 잘 있어요"
할머니가 되고도 남을 이 나이에 국제전화를 할 때 지금도 난 "엄마라고 불러댄다. 이
젠 좀 어른스럽게 "어머니"라고 불러야 될텐데, 아직도 엄마를 향한 이마음은 그냥 옛
날 20대적 한국을 떠날 때 처럼 그냥 "엄마"로 머물러있다.
부모님 역시 나를 부를때 "준호에미야"로 부르지 않고 지금도 "경숙아~"로 부르신다.
하지만 아래 동생들을 부를땐 "아무게 에미야" "아무게 애비야"로 부르신다. 30여년
전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치를자마자 바로 떠나왔기에 4아이를 낳고 기르고하던 내
젊은새댁 시절을 본 적이 없으시기에 그러하리라
계절의 여왕이란 5월, 한국이나 뉴질랜드도 다 어머니날이 끼어있고 5월은 가정의 달
이다. 뉴질랜드의 5월은 겨울이 오는 문턱에서 으스스 추울텐데 웬일인지 오늘을 화
창한 일요일 오후다.
따사로히 내리 쬐는 햇살이 아까워서 서둘러 혼자서 바닷가로 산책을 나섰다. 낮 최
고 온도가 18*C 밖에 안되는데도 서양인들은 겨울이 오기전 마지막 썬탠이라도 하는
양 수영복차림에 우리동네 바닷가 모래사장에 쌍쌍히 누워서 늦가을의 햇살을 즐기
고 있었다. 또 어느 키위엄마는 어린애와 같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참
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문득 엊그제 일이 생각났다. 데어리 숍을 운영하는 지인과 얘길 나누다가 키위 엄마
들에 대한 얘길 하게 되었는데 종종 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그의 가계에 들른다. 그
럴때면 아이들은 과자를 사달라고 엄마를 졸라댄다. "아 글쎄 키위 엄마들은 가정교
육이 엄하고, 철저한 건지? -이기적이고 냉정한 것인지?- 참 우리정서로는 도대체 이
해가 안가요, 졸라대는 아이에게 더도말고 겨우 1불짜리 과자하나 사주면서 무슨 땡
큐는 그리도 연발헤게 하는지~ 더 사달라고 조르면 칭얼대는 아이를 데리고 "휙" 그
냥 나가 버리니까 어늠세 영특해진 그 아이는 그 한개라도 얻어먹을려고 이내 고집을
꺽고 제엄마에게 땡큐 Mum 땡큐를 해요. 그런데 그 엄마는 한술더떠서 가게 주인아
줌마 아저씨에게도 땡큐해야지~ 아, 이런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필요한 담배는 제
일 비싼것을 골라요. 분명히 나라에서 도와주는 생활비의 잉ㄹ부는 아이의 몱이 나올
텐데 어쩜 그렇게도 아이한텐 인색하고 야박한지..." 그자리에 있던 우리는 이구동성
으로 맞장구를 쳐댔다. "어머머, 어쩜 그럴까? 우리 같으면 애들에게 잘해주고도 무
엇을 더 해줄까, 더 못해줘서 안달인데..."
우리가 어렸을적 고기반찬은 명절 날이나 특별한 날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엄마는 고기반찬을 안드셔서 원래 고기를 싫어하고 못드시는 줄 알았었다. 나중에 어
른이 되고서야 알았지만 엄마도 고기를 드실 수 있다는 것을... 어언 45년 전이 던가,
중학교 1학년때 5월8일 어머니날 행사로 극장에서 도라지타령 춤 공연을 하게 되었
다. 그날 엄마 화장품을 잃어 버렸는데도 야단을 치긴커녕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지
금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기뻐하는 그 모습을 지금까지도 엄마는 내게 단 한번
도 야단을 치신적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의 모든 생활이 모범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딸에게 언제나 무엇을 더 못해줘서 안달이다. 대부분의 한국의 엄
마들이 그렇듯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거의 헌신적인 것이 불현듯 그 키위 엄마와 비
교가 되었다. 한국의 엄마들은 자기가 먹고싶고 쓰고 싶은것 절약하여 자녀들에게 엄
청나게 희생하고 쏫아붓지 않나, 작년 한국 방문시에도 엄마 마음에 상처를 주고 쌀
쌀맞게 뿌리치고 왔던 일이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도 난 지금까지 "엄마 고마워요." 라고 표현해 본 적이 없으니 --이런 불효막심
한 딸이 었으니-- 글쎄요! 마음으로 통한다고 하지만 더 늦기전에 이제는 엄마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해야 될텐데.. 오늘도 한국에 계신 엄마에게 겨우 국제전화통화로
"엄마 별일 없어요" 이곳 우리식구도 잘 있어요" 로 인사말을 끝냈다.
이번 어머니날엔 꼭 표현을 해야지 다짐을 해 본다. 지금까지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모든것 "엄마 고마워요" " 엄마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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