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일기] 늙은 곰 두 마리

손바닥소설


 

[농장일기] 늙은 곰 두 마리

일요시사 0 2210

농장일기
                    ”늙은 곰 두 마리”
 
 
 배추에 줄 각종 영양제 와 약을 사러 푸케코에로 갔다 돌아 오는 길에 차창으로 비친 하버브릿지의 바다 물결은 유난히 온통 비취 빛으로 너무 영롱하다. 어제 태풍이 지나간 탓일까? 화사한 비취 빛 그 잔상의 옷을 입고 지난 날들을 생각해본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비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칼 가는 소리에 무섭고도 우울하다.
말 그대로 회오리다 크고 작은 태풍이라도 지나갈 때면 태평양 한 가운데 떠 있는 이 작은 섬나라가 휘청거리다가 날씨가 맑을 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정말 화사하고 오묘 하기도 하다. 몇 일전 비바람 치던 날 아들과 늙은 곰 두 마리가 봄 배추를 심었다. 모종 하우스에 있는 모판을 꺼내며 차디찬 비바람을 가려 줄려고 가슴에 품어 않고 그렇게 심었다. 마치 새끼를 품에 않은 어미 곰처럼….

각종 모종은 13* 이상 따뜻하게 1-2개월 키워줘야 한다. 특히 배추는 그 온도가 내려가면 모종이 냉해를 받고 쫑으로 갈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밭으로 옮겨 또 2-3개월 키워야 하니 농부는 늘 4-5개월 남들보다 부지런한 앞선 삶을 살아야 한다. 말하자면 봄에 출하할 봄 배추를 이 칼 바람 나는 시즌에 심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 일체의 비결을 몰라서 3년을 농사라고 지으면서도 항상 겨울에 배추가 없어 춘궁기를 맞곤 했던 무지하고 게을렀던 나의 왕 초보 시절이 기억난다.
 
올해는 처음으로 100m 4고랑에 배추를 심고 강한 비바람에 비닐이 날라 갈까봐 삽으로 꽁꽁 흙을 아물리며 비닐을 덮었다 비바람에 100m 긴 비닐이 하늘을 향하여 이리 저리 휘청거리고 , 아들도 남편도 휘청이며 밭고랑 에서 들림 당할 뻔 했던 그런 난장판이 없었지만 곰 두 마리는 기필코 이렇게 봄 농사를 시작했다. 그 이튿날 비닐 속에 심어진 화사한 배추와 상추며 알타리 대파등 각종 먹거리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대견해 바라만 보고 있다
    
“아싸! 호랑나비다” 배추 위를 날라 다니던 나비떼들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밭고랑 사이로 이리 저리 나비를 좋아 다니던 나의 모습을 보고 남편이 흐뭇한 표정을 짖는다. 내가 저렇게 철없이 좋아하는 표정을 오랜만에 봐서 일까?
여보 그렇게 좋아? 응 좋아… 힘든 농사일을 안 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 했었나 보다..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깊게 쉰다. 아니 그런데 몇 일 뒤 그 나비들은 애지 중지 키워 놓은 배추 잎에 구멍을 죄다 내었다.

내가 동경 했었던 그런 나비가 아닌, 배추 위에 날라 다니며 애벌레 배설물을 쌓아 더디어 배추 잎을 갈아 먹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띵! 한대 맞은 기분이다 농사가 장난이 아니구나 어쩌지? 어쩌지? 호미 석 자루로 난생 처음 시작한 나의 농장 이었다. 시행 착오도 부지기수였고 몇 년 전 원수 같은 겨울 배추를 심어 단단히 한 몫 챙기겠다고 20 에이커 땅에 4월 말에 8만 포기나 배추를 심어놓고 꿈에 부푼 적이 있었다.

심을 당시에는 한 볕 의 뜨거운 날씨였으니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배추가 무럭무럭 잘 자랐었는데 비바람 몰아치던 7월이 되자 7만 5천 포기나 되는 배추가 몇 일 사이에 갑자기 꽃밭으로 변하고 말았던 시절도 있었다. 올해 처럼 비닐을 덮어 줬어야 했었는데 냉해를 입은 것 이었다.
 
결국 배추 5천 포기 정도 밖에 못 건진 가슴 아픔 시절도 있었다 지나가던 키위들이 예쁘다며 그 넓은 들판에 노랗게 핀 배추 꽂밭 을 보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들을 찍곤 할 때  망연 자실 해 하는 남편 등을 오히려 내가 토닥 거리며 “왕초보가 그럴 수도 있지…에라 모르겠다 햄버거나 하나씩 먹고 집에 가자”며 먹는 걸로 위로 한적도 있었다. 늙은 곰 두 마리의 눈물의 빵 이었고, 욕심 과 무지가 저지른 과욕 임을 깨달았다 냉해에 경험이 없어 씨앗값 거름값 모종값 인건비등 그 많은 투자는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농사란 이렇게 정직한 것 이었다.
 
“서당개 삼 년 이면 풍 을 읊는다” 한국 속담처럼 이렇게 밀고 당기는 삶 속에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농사 왕초보였던 내가 조금씩 조금씩 미련한 곰처럼 배워간다 그리고 정직도 함께 배워간다 “내년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텐데…. 이제 시작 인걸 뭐… 오늘 보다 내일이 조금만 나으면 되지 뭘 봐래!” 나보다 더 미련한 남편 곰은 이 얄미운 소리를 곧 잘한다.
 
나는 앙칼진 목소리로 “지금 더 잘 되도록 하면 안돼! 시작은 3년 전부터 했는데 이제 와서 시작 이라고 하면 어떡해.. 평생 농사 지을 건가? 나 못해!” 이 세 마디 말 때문에 늙은 곰 두 마리는 종종 말 다툼을 하다가도 밭에만 가면 언제 다툼을 했느냐는 듯 화사한 웃음으로 변하니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넷째인 막내 딸이 붙여준 우리들의 별명이었다. 오늘은 유난히 화사한 날씨다 비닐이 잘 덮여졌나 다시 한번 점검 하며 푸케코에에서 사온 달팽이 약을 뿌려 주면서 많은 이웃들에게 나누어줄 우리 배추가 잘 자라나길 마음으로 기도한다.  

한국김치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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