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이야기 - 마오리(Maori) 인물들

손바닥소설


 

뉴질랜드 이야기 - 마오리(Maori) 인물들

일요시사 0 3149

뉴질랜드만의 국가경쟁력은 과연 무엇인가? 아름다운 자연환경만으로 관광객을 모으던 지난날에서 진보하여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시점에서 눈길을 모으는 것이 바로 마오리의 역사와 전통이 아닐까?

영연방 국가인 뉴질랜드가 유럽적인 문화로는 세계와 경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는 마오리 전통을 존중하고 그들의 문화를 뉴질랜드의 문화 자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럭비경기전의 하카의식이 가장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연가(戀歌)도 마오리 노래 Pokarekare ana이다. 마오리 출신 영화감독 리 타마호리가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호주의 어보리진이 학살당한 것이나 티즈매니아 원주민이 사냥놀이의 명분으로 백인들에게 멸족당한 것과는 달리, 마오리 족은 와이탕이 조약으로 유럽인들과 동등한 관계에서 한 나라를 이루고 살고 있다. 마오리족은 와이탕기 조약을 이유로 정부와 전기회사에 물 사용료을 요구하기도 한다.

현 뉴질랜드 총독 제리 마테파라도 마오리 출신이다. 제리 마테파라는 첫번째 뉴질랜드군 참모총장이었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재임했던 폴 리브스가 첫 번째 마오리 출신 총독이었다.


최초의 마오리 쿠페(Kupe)
뉴질랜드에 도착한 최초의 마오리는 쿠페(Kupe)이다. Kupe는 그의 항해사 Reti와 함께 전통적인 항해 법을 사용하여 약 60여명의 선원들과 아내, 아이들을 데리고 이 땅에 도착했다.

쿠페는 마오리의 카누인 와카호루아 를 타고 별과 바닷물의 흐름을 따라 이 곳에 왔다. Kupe 일행을 태운 카누가 육지에 다다를 즈음, Kupe의 아내 Hine-Te-Aparangi는 멀리 길게 뻗어있는 구름을 보고 ‘He ao! He ao!’ (A cloud! A cloud!)라고 외쳤다. Kupe는 이 땅을 ‘Aoteroa’라고 이름 지었고 이 이름은 ‘길고 흰 구름의 땅’ 이라는 뜻으로 현재 ‘New Zealand’와 함께 마오리 공식 국가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오리 사회운동가 Apirana Ngata
50 달러의 지폐 인물로 유명한 아피라나는 마오리로는 최초 대학졸업생이었다. 오클랜드대학에 입학, 법학 학사를 따냈으며 그 후 법조인이 됐다. 아피라나는 마오리들의 경제적, 사회적 개선에 무엇보다 앞장을 섰다. 1900년 초, 아피라나는 마오리토지관리법과 마오리위원회법 제정에 일조했다. 이 법안 제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아피라나는 국회에 들어갔다.
아피라나는 마오리들도 스포츠를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 주었고, 오늘날 마오리의 춤을 대표하는 하카를 대중화시켰으며, 마오리 카빙(손 조각)을 국가 차원에서 계승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아피라나는 제임스 캐롤(첫 마오리 국회의원)과 마우이 포매레(마오리 의사)에 이어 세번째로 기사 작위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마오리 출신 세계적 소프라노 Kiri Te Kanawa와 Pokarekare ana(연가)
Pokarekare ana(연가)는 1914년부터 불려지기 시작한 마오리 사랑노래이다. 1912년에 마오리 지도자중의 한 사람인 Paraire Tomoana가 18살 된 Kuini에게 보내는 구애의 편지 속에 이 노래의 가사의 일부를 써서 보냈고 1913년 청혼을 하면서 Kuini의 부족의 marae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지금 뉴질랜드 국가 다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이 노래는 한국전에 출전했던 6,000명의 뉴질랜드 병사들에 의해서 한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뉴질랜드가 나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가 Pokarekare ana를 부른 가수로 유명하다. 마오리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 Kiri Te Kanawa가 내한 공연 때 우리나라 팬들이 자기 나라 민요를 같이 따라 부르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라며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마오리 출신 영화감독 리 타마호리
뉴질랜드에서 영화 산업은 국가적인 지원을 받을 정도로 유망한, 그리고 뉴질랜드의 영화 인력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우수한 인력 자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뉴질랜드 영화를 세계에 알린 인물은 그 유명한 피터 잭슨 감독이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헐리우드에서 인정받는 감독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독은 ‘리 타마호리’ 일 것이다. 마오리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리 타마호리는 감독은 1995년 감독 데뷔작인 <전사의 후예>는 발표된 그 해에 타임지 선정 10대 영화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베니스 영화제 신인 감독상, 몬트리올 영화제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작품성 뿐만 아니라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리 타마호리 감독은 이후 화려하게 헐리우드에 입성하면서 <스파이더 게임>,<트리플 게임>, <007 어나더데이>, <넥스트>등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춘 흥행작들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리 타마호리 감독의 최고의 영화는 데뷔작인 <전사의 후예>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 황토빛 색채가 뉴질랜드의 색깔이라고 느껴질 만큼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그 푸른 빛이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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