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뜰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7> 아내의 뜰

오문회 0 1847

뉴질랜드의 봄은 여성들의 손끝을 통해 피어난 아름다운 꽃향기에서 시작되는가 싶다. 그 중에서도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봄은 단연히 노오란 후리지아 꽃 내음과 함께 싱그러운 바람이 제몫을 다 하고 있다. 

정원 관리에 정성을 쏟는 모습들이 참 평화스럽고 여유 있어 보인다. 젊은 애엄마부터 나이 드신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꽃을 가꾸고 나무들을 손질하는 손길 속에 봄은 벌써 성큼 다가와 있다.

몸이 좀 쉬고 싶다고 투정을 부린 것도 달래가며, 주어진 일에 몰두해야 비로소 위안이 되는 것이 우리 이민자의 현주소라면 그건 좀 안타깝지 않은가 생각해보면서 또 하루를 보내고 들어오는 발길이다. 이렇게 일을 마치고 골목길을 돌아 마당 입구로 들어설 무렵이면 코끝 가득 전해오는 후리지아의 진한 꽃 내음에 그만 택시를 멈추고 만다.

깊게 심호흡하며 다시금 맡아보는 꽃향기에 취하다 보면 하루종일 쌓였던 피로가 봄볕에 눈 녹듯 씻겨 내린다. 지긋이 눈을 감고 앞마당 뜰을 내려다보니 그윽한 평화가 샘솟아 오른다. 고맙게도 앞마당 꽃밭은 내 몸과 맘의 먼지를 털어내는 정화 필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런 사랑스러운 앞뜰에 때때로 나도 모르게 머무르게 됐고 차츰 길들여지는 그런 시간이 기다려지게 됐다. 고국에 있을때 무척이나 꽃이나 난 가꾸기를 좋아했던 아내가 그곳 아파트 생활에선 그 여유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뉴질랜드야 거의 모든 집이 앞뒤 뜰을 갖고 있어 생활에 활력을 얻게돼 생동감이 넘쳐난다. 정원 가꾸기가 건강에 다시 없이 좋은 취미이자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여겨진다.

언제부턴가 이런 아내의 모습이 좋았다. 뒤뜰에서 미나리 새싹을 뜯는 아내의 모습을 보게되면 더 없이 평화롭게 보인다. 더욱이 그게 이웃에게 나눠주려는 경우엔 미나리를 담는 함지박 가득 기쁨도 넘쳐나는걸 보게 된다.

지은지 오래된 집이라 앞뒤뜰 터가 넓고 나무들이 많아 잔디 깎고 나무손질 하자면 꽤나 일손이 필요한 번거로움이 있어 한때는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할까 생각도 해보며 여러 집을 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아내가 지금사는 집에 애착을 보여 눌러 살다보니 6년째 정붙여 살게된 보금자리가 됐다.

어찌 보면 시골집 같고 산 속의 작은 별장같다는 느낌도 드는데다, 자주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이런 분위기가 몸에 배어 이제 소박한 시골집에서 사는 여유로움이 생긴 것이다. 철따라 과일이나 푸성귀들이 나와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터전으로 여겨져서 마음 또한 풍요롭다.

유난히 후리지아를 좋아하는 아내가 앞뜰 이곳 저곳에 후리지아를 옮겨 심어 요즈음 앞뜰은 온통 후리지아 꽃 일색이다.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 하얀색, 예쁘기도 하고 그 향내가 참 그윽도 하다.

모임이나 이웃 방문이나 회합에 참석할 때면 후리지아 꽃묶음이 으레 당연 지참물이 됐다. 가는 곳마다 그 향기를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아내의 고운 마음과 그러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뉴질랜드의 봄이 좋아지고 있다.

두고 온 고국, 친지, 이웃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뛰어가 아파트 생활, 직장 생활에 바쁜 그네들의 식탁에 몇 송이씩만이라도 꽂아 주고 싶다.

오래가는 꽃향기에 그 바쁜 일과도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웃에게 뭔가 나눌 수 있는 작은 꽃들, 푸성귀, 과일들로 가득차 있게 되니 이 얼마나 고마운 터전인가?

말씀이 사람이 돼 오신 그분은 이제 자연으로 오셔서 우리 곁에서 속삭이고 계신다. 그러기에 앞뜰 후리지아 꽃망울을 살짝 흔들어주는 가벼운 봄바람 속에도 오시고 뒤뜰 살찐 미나리 밭 언저리에도 머물다 가신다.

그분께서 보시기에 좋은 나눔의 모습은 뭘 꼭 많이 가진 자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없어도 적게 가졌어도 작은 마음이라도 서로 나누려는 모습에 그분은 내려오셔서 잠깐씩 쉬시다 가신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따사한 봄햇살을 가득 받아 화사하게 빛나는 앞마당 후리지아 꽃향기가 더욱 더 짙게 넘쳐난다. 뒤 텃밭 미나리싹도 더 더욱 생기 돋아 푸르다. 

봄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바라만 봐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시골집같은 터전에 작은 사랑 샘솟는 아내의 뜰이 있음을 다시금 그분께 감사드린다.

<세아뜨 문학상 수필 부문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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