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쑥스러운 자랑질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13>조금은 쑥스러운 자랑질

오문회 0 1811
며칠 전 콘월 파크를 산책하다가 한 중년 남자를 만났다. 한 손에는 슈퍼마켓에서 사온 식료품 봉투를, 또 다른 손에는 자수 표구 상자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표구 그림이 눈에 뜨여 ‘하이’ 하며 다가섰다. 어떤 자수인지 한번 볼 수 있겠냐고 했더니 상자를 열어 내게 보여줬다. 옛날 중국 성을 한 올 한 올 바느질로 만든 작품이었다.

그는 모름지기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은 물건이 많아야 세상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가던 길을 재촉하려고 했다. 난 옛날 책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맞장구 치면서, 혹시 괜찮으면 “당신네 집까지 태워다 드릴 수 잇는 호사를 누려도 되겠느냐”고 정중히 물었다. 몇 차례 거절하던 그가 내 진심 어린 호의를 알아차렸는지 차에 올라탔다.

남아공 출신으로 23년 전 이민을 왔으며 오래 전 아내와 헤어졌다고 알려줬다. 몇 년 전 뜻하지 않은 뇌졸중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고 했다. 의사가 운전은 하지 말라고 해서 주로 걸어서 이동한다고 말했다. 십여 분 뒤 그의 집에 도착했다. 내가 만약 착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반 시간이 넘는 그 먼 거리를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갔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일 일선(一日 一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루에 한 가지 착한 일을 하겠다는 몇 년 전 다짐이 생각난 것이다. 아마 그 무렵 내가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아 하루 한 가지 착한 일을 하면 혹시나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그 뒤 될 수 있으면 하루 한 가지 착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쓴 것 같다. 아마 그것이 생활화되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착한 짓을 쭉 해오지 않았나 믿는다.

내가 말하는 착한 일이라는 게 그리 대단하거나 특별한 게 아니다.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을 굳이 ‘착한 짓’으로 분류해, 스스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별 유난을 다 떨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착하게 살고 싶어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착한 짓.
 하나, 엘리베이터 탈 때 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나중에 타기.
 둘, 어디에 주차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에게 저쪽에 빈자리 있다고 말하기.
 셋, 투 달러가 모자라 집에 갈 수 없다는 학생에게 포 달러 주기
 넷, 공중화장실 바닥이 지저분할 때 핸드타월 다섯 장으로 살짝 훔치고 나오기.
 다섯, 영어가 잘 안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낯선 교민에게 “도와드릴까요” 하고 묻기.
 여섯, 양쪽이 사소한 일로 분위기가 이상해지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꿔 제 자리로 돌려 놓기.
 일곱, 좋은 책 한 권 읽으면 인생이 바뀔 것 같은 젊은 친구에게 책 선물하기.
 여덟, 몹쓸 병에 걸려 삶의 그늘에 빠진 지인에게 참 마음 담은 위로 메일 보내기.
 아홉, 잘못된 세상 한 번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이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박수 보내기.
 열, 밥 사주고 빵 사주고 커피 사주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정말로 고맙습니다’ 표시하기.

이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착한 일이다. 배포가 작은 놈임이 분명하다. 내가 억지로라도 일일 일선을 하려는 이유는 일일 십악, 아니 일일 백악을 저지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지은 죄, 행동으로 지은 죄, 또 그 중간 즈음에서 지은 죄를 내가 잘 d라고 있어서이다. 혹시라도 누가 “네 선 하나 때문에 네 백악을 폐하리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야릇한 기대도 하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것 보면 착한 일 하고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착해서는 살 수 없는 게 이 세상이다. 좀 야박하게, 이기적으로 그리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치 누구나 그렇게 사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야 겨우 버텨낼 수 있는 게 세상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럼에도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어내듯, 내 보잘것없는 착한 짓 하나를 품에 안은 그 누가 또 다른 착한 일을 하고…… 그렇게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람이 착한 일들을 하고 산다면, 이 세상은 쪼금 더 아름답게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하고 있다.

오늘 내가 한 착한 짓은 무엇일까.

아, 이 글 쓴 걸로 하면 될 것 같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내일 아침, 마음 거북한 친구에게 ‘우리 점심이나 할래?’하며 그런 따듯한 말 건넨다면, 조금은 쑥스러운 내 자랑질이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으리라.

시인과 나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 021 272 4228


0 Comments
제목
광고 Space available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