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계신가요 – 갈리폴리의 붉은 양귀비와 플랑드르의 붉은 양귀비

손바닥소설


 

알고 계신가요 – 갈리폴리의 붉은 양귀비와 플랑드르의 붉은 양귀비

일요시사 0 2730

뉴질랜드에선 많은 사람들이 안작 데이에 가슴에 붉은 꽃을 단다. 가슴에 단 꽃은 안작데이를 상징하는 붉은 양귀비 꽃(Anzac Poppy)이다. 붉은 양귀비 꽃(poppy)을 가슴에 꽂고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것이다. 붉은 양귀비 꽃(poppy)은 갈리폴리를 비롯한 유럽의 전쟁터에서 흔하게 자라는 야생화이며, 또 빨간 색을 보며 피 흘리며 숨져간 전우들을 기념하는 등 전쟁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안작 연합군 8,000명이 전사한 갈리폴리 전쟁터에 붉은 양귀비 꽃이 피어난 것은 죽은 병사들의 붉은 피를 의미한다고 생각 했다. 안작데이에는 안작 연합군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뜻으로 갈리폴리 전장터에 피어난 양귀비 꽃을 달기 시작했다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안작데이에 빨간 꽃을 다는 진짜 유래는 이와는 다르다. 뉴질랜드 Poppy day는 4월의 안작데이가 아닌 11월 종전 기념일에 기획 되었다.

뉴질랜드 Poppy day의 붉은 양귀비 꽃 유래는 안작데이와 연관이 있는 터키의 갈리폴리 전쟁터가 아닌 벨기에 플랑드르 전쟁터의 붉은 양귀비 꽃이었다. 붉은 양귀비 꽃을 가슴에 다는 유래는 1차대전에 종군한 캐나다 온타리오 주 구엘프(Guleph) 출신 종군 의사 ‘John McCrae’가 그의 동료 알렉시스 헬머 중위가 전사한 후 1915년 5월 3일에 썼다고 전해지는 ‘In Flanders Fields’라는 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벨기에 플랑드르 전투에 참전했던 그는 진흙탕 참호 속에서 총탄에 맞아 죽어가는 젊은 군인들의 피로 얼룩진 전쟁터에서 빨간 양귀비꽃이 피어난 것을 보고 이 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그 중에는 미국 YMCA에서 일하고 있는 Moina Michael (1869–1944)도 있었다. 그녀는 1918 년 종전 기념일(11월 11일)에 이 시를 답하는 'We shall keep the faith'라는 시를 썼다. Moina Michael은 미국에서 전쟁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는 꽃으로 붉은 양귀비 꽃을 채택하는 것을 그녀의 미션으로 생각 했다. 미국의 군대는 1920년 9월 연래 행사부터 양귀비 꽃을 추모의 꽃으로 채택하게 된다.

‘The Poppy Lady’로 알려진 Madame E. Guerin은 이 꽃을 국제적인 전쟁 희생자 추모 꽃으로 발전 시킨 사람이다. Guerin은 양귀비 꽃을 만들고 판매해 퇴역 군인들의 복지와 그의 가족과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사용했다. Guerin은 많은 나라의 퇴역 군인회와 접촉해 양귀비를 전쟁 희생자 추모의 꽃으로 채택 되게 했다.
 
뉴질랜드도 그 중 하나의 나라였다. Guerin의 대리인 중 한명인 Colonel Alfred Moffatt가 1921년 9월 뉴질랜드 퇴역 군인회에게 양귀비 꽃 아이디어를 제안 했다. 뉴질랜드 퇴역 군인회는 350,000개의 작은 실크 양귀비 조화와 16,000개의 큰 양귀비 조화를 주문하게 된다. 모두 Madame Guerin의 프랑스 아동 협회에서 만든 것이었다.

퇴역 군인회는 다른 나라들처럼 1921년 종전 기념일(11월 11일)에 첫 번째 Poppy Day를 개최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뉴질랜드로 양귀비 조화를 운송하는 배가 너무 늦게 도착하게 되어 제 날짜에 사용 할 수 없었다. 퇴역 군인회는 양귀비 꽃을 1922년 안작데이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양귀비 조화는 1922년 안작데이 하루 전부터 판매를 시작했는데 첫 번째 Poppy Day는 아주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거의 모든 가게에서 일찍부터 매진 되어 작은 조화는 245,059개 큰 조화는 15,157개가 판매 되었다.  판매 금액은 총 £13,166이었다 이 중 £3695가 프랑스 아동 협회로 보내지어 프랑스 북부 전쟁 참화 지역의 고통을 벗어나는데 사용 되었다. 협회는 직업이 없는 퇴역 군인과 그 가족을 위해 기금을 사용 하였다.

Poppy Day는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뉴질랜드는 1931년부터 오클랜드와 크라이스트처치 에서 장애 군인들이 자체적으로 종이로 된 양귀비 조화를 만들게 된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 때는 전국에 750,000개의 양귀비 조화가 유통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Poppy day가 뉴질랜드에선 안작 연합군의 희생을 추모하는 행사로 발전된 것은 아주 잘된 일이라고 생각된다. 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안작데이는 와이탕기데이와 함께 뉴질랜드만의 역사적 기념일이다. 뉴질랜드의 정체성을 가지게 하는 날이다.

안작 데이가 처음 생기게 된 연유는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중 터키의 Gallipoli 반도에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이 상륙한 일에서 찾을 수 있다. 호주군 20,000명과 10,000명의 뉴질랜드군이 양국 연합군인 ANZAC를 편성하게 된다. 갈리폴리 전투에서 안작군은 8,000 명이 전사하고 18,000 명이 부상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그 당시 인구 100만에 불과했던 뉴질랜드는 1차 대전 동안 110,000 명이 참전했으며, 그 중 18,000 명이 전사하고 55,000 명이 부상을 당했다. 뉴질랜드는 인구 비례로 볼 때 참전국 중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이웃 호주 역시 당시 인구 500만 명 중 33만 명이 참전, 59,000 명이 전사했다. 안작 데이는 이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8개월간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자유를 위해 희생된 병사들을 기념하고 그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 다음해인 1916년 처음 거행됐던 기념행사에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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