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14>길

오문회 0 1871

 

좋아도 좋아할 줄 모르고

싫어도 싫어할 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그냥 그렇게 길이 난 길을 따라

걸어갈 뿐 이었습니다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꽃이 지고 새가 우는 줄은

예전엔 몰랐지만

꽃이 지고 새가 웃는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엔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볕으로

그대들과 한 몸 되어

속삭이듯 길을 갑니다

 

이 길 걷다가 길 끝이 나올 때까지는

해가 뜨면 새, 꽃, 구름, 바람과 친구하고

해가 지면 별과 달과 벗 삼아

길이 아닌 길을 찾아

나를 내가 보냅니다

  

시작 노트

부푼 꿈을 안고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오고, 첫 직장을 다니면서 장밋빛 희망 속에 한 여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보다 뒤처질까봐 조바심을 내며 총총걸음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며 숨 가쁘게 살아왔습니다. 삭막하고 살벌했던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포로가 되어 겨우 살아 돌아와 지금 여기에서 어느 날 문득 느껴지는 내 느낌, 즉 인생을 길에 비유한 나의 마음을 소박하게 표현한 글입니다.

젊었을 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잘 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길의 느낌을 과거 젊었을 때보다는 조금은 더 깊게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때 찬란한 청춘의 봄이 있지요. 또 뜨거웠던 태양의 계절, 정열의 여름도 있지요. 누구라도 그 당시에는 무소의 뿔처럼 거칠 것 없었던, 조금의 주저함이나 그 어떤 두려움도 없는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벤츠 자동차 같은 거죠.

나 역시 그랬던 인생의 한 때가 있긴 있었나 봅니다. 희미한 기억 저편 너머에 말이죠. 그때에는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갔습니다. 새가 우는 줄도, 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뒤돌아 볼 새 없이 앞만 보고 뛰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무심한 세월이었죠. 

무엇보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독한 인간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낙엽 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원두커피 향 짙은 롱블랙 커피 같은 깊은 가을 냄새와 붉게 노을 지는 석양빛이 있는 또 다른 고향 하늘의 이 가을 하늘을 사랑합니다.

혹시라도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와 가을 냄새를 느끼며 시를 낭송해 보신 적 있나요? 가끔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나 홀로 느껴보는 이 소소한 행복의 느낌은 잃어버린 나를 찾아 길 떠나고 앞으로의 나의 길을 찾아 비치는 밤바다의 등대 같습니다.

내가 1970년대 후반 군인이었을 때, 야외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오는 길 양편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10월의 코스모스로 전해지는 그 가을의 향기는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느껴집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만약 내가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적어도 나는 일 주일에 한 번쯤은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 것을 습관으로 삼을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름 없는 가을이 없듯이 이제 치열했던 삶의 한 자락을 넘기고, 오늘 이 가을의 향기 속에 몸을 맡긴 채 마음의 정화와 행복을 소박하게 느껴봅니다.

머지않아 내 머리 위에 흰 서리 내리고 내 마음속에 흰 눈이 내리는 순백의 계절, 겨울이 오겠죠. 사방이 고요하고 눈이 내리는 황홀한 겨울밤에 솜사탕 같은 흰 눈이 마당의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일 때면 멋진 내 친구들과 멋진 송년 파티를 준비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겠죠.

나는 점잖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이제 인생 1막 2장이 끝나고, 곧 2막 1장이 시작될 때에 부디 많이들 오셔서 다 함께 그 파티를 즐겨보지 않으시렵니까? 


정우성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오클랜드문학회
오클랜드문학회는 시, 소설, 수필 등 순수 문학을 사랑하는 동호인 모임으로 회원간의 글쓰기 나눔과 격려를 통해 문학적 역량을 높이는데 뜻을 두고 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동참을 바랍니다.
 

문의 021 272 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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