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도 영어 공부 좀 하시지요”

손바닥소설


 

“부모님도 영어 공부 좀 하시지요”

박성기 0 3705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영어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고 있는 나라에서 영어를 못 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인해 수 많은 불편을 겪게 될 수 밖에 없다. 단지 영어로 의사 소통을 원만하게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사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커 가면서 영어를 못하는 엄마 아빠를 우습게 보거나, ‘영어도 할 줄 모르면서…’ 라는 자식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기도 한다. ‘누구 덕에 니들이 영어 좀 하게 되었는데, 공도 모르고……’ 속은 답답하지만 그저 자식들 영어 실력이 늘어난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경우가 대다수가 아닌가 생각한다.

뉴질랜드에 사는 수 많은 민족 중 한국 사람이 가장 영어를 못 한다는 통계는 우리 교육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이다. 뉴질랜드에 사는 이민 1세대 대부분이 40대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받은 문법 위주의 영어공부 결과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무의미한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영어를 잘 하고 싶어한다. 애들 학교공부도 좀 봐 주고, 키위와 말싸움을 할 때 제대로 된 영어로 진검 승부를 펼치고 싶어하기도 한다. 슈퍼마켓에서 잘못 받은 거스름 돈에 대해 매니저를 불러 ‘직원교육 좀 잘 시키라’고 따끔한 충고도 하고 싶어한다. 3박4일 예를 들어도 아마 영어에 맺힌 한은 끝이 없을 것이다. ‘내가 영어만 좀 유창하게 했다면 니네들 국물도 없다…’ 얼마나 자주 하는 말인가?

하지만 영어에 대한 한만 있지 그 한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매일 매일 똑 같은 대사. ‘영어 공부 좀 해야 하는데…’ 하루에 단 5분도 영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영어를 잘 할 수 있겠나? ‘눈치로 배우는 영어’, 이런 책을 수 십권 써 낼 수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눈치는 실력이 아닌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민들 바쁜 거야 누구나 다 안다.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고, 자식들 뒷바라지 해야 하고, 종교 생활해야 하고…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공부할 시간이 지천에 깔려 있다. 아무 영양가 없는 남 얘기하는 그 시간(30분), 한국 드라마 보는 그 시간(1시간), 골프 치고 수다 떠는 그 시간(2시간)…… 줄이고 줄여도 하루 2시간 이상은 충분히 영어공부 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한다.
“이 나이에 내가 영어 공부하랴?”
나이 사십 넘은 사람의 얘기다.

“한 때는 내가 좀 영어깨나 한다는 소리 들었는데……”
지천명(50세)이 막 지난 사람의 회고이다.

하지만 시인 서정주는 고희(70세)가 넘어서도 외국어(러시아어)를 공부했고,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씨는 나이 불혹(40세) 즈음에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영어의 바다에 빠트려라<헤엄쳐라, 솟구쳐라 등등>’라는 영어 공부 관련 명저를 남긴 하광호 교수 또한 만학의 유학길에 올라 미국의 영어과 교수가 되었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세미나에 참석해 발제 강의를 하거나, 현지인 컨설팅회사에 취직하거나, 법정 통역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어권 국가에 살고 있는데 적어도 생활 영어는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언제까지 이유 없이 뒷머리만 긁거나 열 살도 안 되는 코흘리개 자식을 통역자로 내세워야 하나?

제발 영어 공부 좀 하자. 생산적인 일에 투자하자는 말이다. 남 얘기 그만, 수다 그만, 시간 때우기 골프 낚시 그만, 그리고 한국 드라마 적당히 보고 집에 오는 각종 찌라시를 영어공부 자료라 생각해 사전 찾아 가며 공부하자.

서바이벌 잉글리시(Survival English)를 하자는 말이다. 본격적인 이민도 20년이 넘어섰고, 뉴질랜드 여건 상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미국 LA마냥 영어가 필요없는 땅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억울한 손해 안 보고, 더 이상 수모 안 당하고 살려면 영어공부하는 수 밖에 없지 않겠나?

두꺼운 영어 사전 옆에 끼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공부하는 엄마 아빠 모습을 보는 자식들이 감히 부모를 무시할 수 있겠나? 부모 몰래 ‘가라 사인’ 만들어 학교 땡땡이 칠 수 있겠나? 학력으로만 따진다면 우리 이민 1세 실력 따라갈 사회가 어디 있겠나? 자, 자긍심을 가지시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도전해 봅시다.

차제에 범교민영어공부하기 캠페인을 펼쳐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모든 교민들이 만날 때마다 잘 하든 잘 못 하든 5분간 영어로 대화하고, 자식들에게 하루 30분씩 영어 배우고, 각고의 노력 끝에 영어 공부에 성공한 이민 1세 표창하고…… 그렇게 말이다.

영어는 교민 사회의 힘이다. 끗발있는 교민 사회는 영어와 함께 만들어진다. ‘영어 실력 꼴찌’로는 아무 힘도 쓸 수 없다. 당신의 영어 실력이 교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 이제 다부지게 마음을 잡고 영어공부삼매경에 빠져 보자. ‘영어 완전 정복’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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