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다가서는 향기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15> 가슴으로 다가서는 향기

오문회 0 1820

 

서울 명동 성당 격인 오클랜드 Patrick 주교 좌 성당에서 평일 미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미사를 집전하던 키위 신부가 미사를 함께 드리던 신자들에게 양해 말씀을 구했다.

 

“오늘 이 미사를 마치면서 남 달리 특별한 의미를 느끼는 두 분을 여러분 앞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55년 전 오늘, 저 성당 앞문을 통해 신랑 신부로 입장해 혼배 미사를 치렀던 젊은 청춘 남녀가 있었습니다.그리고 함께한 55년 후, 오늘도 같은 문을 통해 두 분이 들어와 이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지금 여기, 그들에게는 감회가 깊은 순간이라 생각됩니다. , 그럼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두분,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궁금증으로 가득 찬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시 뒤, 중간 석에 앉은 팔순의 노 부부가 멋적은 듯 일어섰다. 멈칫하더니 좌중을 향해 목례를 하였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축하의 박수를 쳤다. 두 분이 다정히 손을 잡고 제대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자 성당 안은 축하의 박수 물결로 넘실거렸다.

 

신부 앞에 두 분이 서자 두분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해주었다. 55년을 함께한 부부의 인연, 지켜보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다소곳이 선 감나무 두 그루였다. 세상의 온갖 풍파와 우여곡절의 고개를 담담히 넘어온 세월...... 황혼의 소소한 모습을 잔잔하면서도 은은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가을의 석양 노을이 감나무 잔가지 위에 머물며 감 홍시 단 내를 저어 올렸다.

 

기도가 끝나자 노 부부가 돌아서서 신자들을 향해 공손히 인사로 답례했다. 다시금 뜨거운 박수의 환호가 이어졌다. 신부가 다시 한 말씀을 하였다

“이 두 분이 혼배 성사로 부부의 인연을 맺은 뒤 11년 지나 낳은 아들도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44세가 되었나요? 그 아들도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어요? 아들 분! 나와주세요.

 

또 다시 모든 이들이 궁금해 하는 모습으로 이리 저리 고개를 움직였다.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신부가 신자 석을 향해 다시금 주문을 하였다. “아들 분! 어서 나와주세요.” 반응이 없었다. 잠시 뒤 신부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아들이 안 나왔나 보다고 신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때 신부가 노 부부 앞에 나와 조금 전 노 부부처럼 신자들을 향해 더욱 공손하게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모든 신자들이 벌떡 일어나 신부와 노 부부를 향해 힘찬 기립 박수를 보냈다.

 

감 홍시 단내가 성당 안 사방에 짙게 퍼져갔다. 가을 감나무 아래 모인 신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홍시처럼 익어가며 그윽함을 안겨주었다. 맑고 풍성한 자연의 자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박수소리가 어느 정도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 다시 신부가 말씀 하였다

“이 두 분이 바로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이 자리까지 저를 키워주시고 보살펴준 부모님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지혜로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사제의 길로 잘 인도해주시는 사랑의 하느님께 이 모든 감사와 영광을 바칩니다”

 

부활의 축하 노래가 다시금 힘찬 박수에 실려 성당 안을 가득 채웠다. 다소곳이 세 분이 함께 신자들을 향해 답례의 인사를 드린 뒤, 돌아서서 제대와 십자가를 향해서도 더욱 정성스레 인사를 올렸다.

 

그칠 줄 모르는 뜨거운 박수와 감동의 물결이 온 성당 안에 가득 차고 넘쳐났다. 퇴장 성가가 울리자 그에 맞춰 세 분도 퇴장을 하였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이 평일 미사가 끝났다. 다시 평상으로 되돌아 갔다. 신자들도 제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이벤트 성 행사를 위한 특별 소품이나 꽃다발 하나 준비하지 않으면서도 그대로 가슴에 안겨준 단순한 진행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가슴에 흥건하게 남아있는 감 홍시 단내가 아직도 배어나 있다.

 

무엇을‘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또한 무엇을‘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한 단계 더 나아가 무엇을‘깨닫는다’는 것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활 곳곳에 감동의 씨앗으로 심어져 있는 것들이 참으로 소중히 여겨진다. 이렇게 우리 생활 주변에 배어있고, 자연 속에 그대로 간직 돼 있는 깨달음의 진수들이 때에 맞게 가슴을 톡톡 두드린다. 그리고 그때 그때마다 그 소리에 다가서는 열린 마음을 갖기만 하면 된다고 일러준다.

 

눈에 보이는 빙산이 그 빙산의 본 모습 전체는 아닌데, 그 보이는 빙산 1% 전체인 양 거기에 머물고 마는 경우가 참으로 허다하다.

 

머리로 인식하고 머무는 게 바로 ‘안다’는 게 아닐까. 그걸 입으로 말하고 공감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선상에 오르는 것일 테고, 이해한 것을 자기 생활 속에 기쁨으로 표출해내는 것이‘깨닫는다’는 단계 같다. 살짝 드러난 행동에서도 그 내면의 본 모습을 읽을 수 있다면 쉽게 판단하지 않을 것이고 배려 있는 다가섬이 따르게 마련이다

 

곱게 세월을 이겨온 노 부부처럼 여름날 그늘 드리워주고, 가을날 열매 맺어 주는 한 그루 나무로 서고 싶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눈 빛으로 말하고, ‘가슴으로 다가서는 향기’가 되고 싶다수수해 보이고 화려하지 않아도 가슴을 적셔주는 오래가는 꽃 향기처럼 은은하게 풍기는 가을 홍시 단내가 그리운 계절이다.

 

지금여기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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