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라 불리운 사나이(바불사 傳)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19> ‘바람’이라 불리운 사나이(바불사 傳)

오문회 0 1921

‘바람’이라 불리운 사나이(바불사 傳

 

 사람들은 그를 ‘바람’이라 부른다. 늘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간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고언제 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1990년대 끝무렵, 한 기독교 모임에서 만났다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교민 사회가 워낙 좁아 한 다리 건너면 다들 알만한 상황이었던지라 거절을 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초대를 받아들였다. 나이는 오십이 다 되어 보였다. 그냥 껄중한 키에 바짝 마른 체형으로, 겉모습만으로도 진중함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중년이었다.

 

 기독실업인회 뉴질랜드 지부 창립식이었다. 어디에서 내 과거 이력을 들었는지 한국에서 교계 신문사에 몸담고 있었던 만큼, 홍보 쪽 일을 맡아 달라고 한 것 같다. 승낙 반, 거절 반 상태로 밋밋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러다가 2005 9, 내게 정중한 제의를 해 왔다. 뉴질랜드에 기독교 신문을 하나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크리스천라이프라는 신문이다. 지금도 2주 마다 나오는 이 신문은 온전히 바람이라 불리운 사나이(바불사때문에 시작됐다.

 

 처음에 그는 내게 월 4,000달러를 넌지시 암시했다그때 월급치고는 센 편이었다. 내가 만약 그렇게 받았다면 말이다. 몇 달의 준비 작업 끝에 2006 1 6일 창간호가 나왔다. 60쪽이 넘는, 당시로써는 교민 신문치고는 규모가 큰 신문이었다‘크리스천’ 쪽은 기독교 내용을 담았고‘라이프’ 쪽은 일반 교민 내용을 주로 다뤘다. 일종의 선교용 신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신문이 나오고 한 달이 지날 무렵바불사는 직원들에게 농담 반 진지함 반으로 폐간을 알렸다. 창간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교회들의 관심이 너무 없어 만드는 의미를 못 느끼겠다. 

 그러나 다음 호도 무사히 나왔다. 몇몇 독지가와 교회들이 희망을 주었다. 그러다가 그다음 달이면 또 폐간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냈다. 그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와 함께 6년 반을 보냈다. 4,000달러가 2,000달러로 줄고, 또 그마저도 어려워 기름값 정도만 받고 일을 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쉽게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서로 뜻이 맞지 않아 말싸움을 더러 하기도 했다그러나 그의 깊은 뜻을 이해했기에 심한 충돌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컸지만 나는 편집자로, 그는 경영인으로 역할 분담을 잘해낸 덕분에 신문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는 그의 생각아니 신념을 존경한다. 그의 삶 자세를 귀히 여긴다. 그는 돈을, 그리고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쓰는 사람이다바불사는 오클랜드에서 수많은 단체를 조직했다. 아마 십여 개는 족히 넘을 것이다일을 제대로 하려면 돈이 들어가야 했고,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그는 그 많은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앞 뒤 내용도 모른 채 남의 얘기하기 좋아하는 입만 바른 사람들은 종종 그를 비난한다. 너무 가볍게 처신한다거나, 일만 벌여놓고 뒤처리를 제대로 안 한다거나 하는 것이 이유이다돈 한푼 낸 적 없고시간 한번 남을 위해 쓴 적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그럼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 비난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난은 그들의 몫일 뿐, 나는 내 일만 하면 된다”는 굳은 의지가 있어서이다.

 

 그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쓴 돈만 해도 수십만 달러에 이른다. 본인은 5~6달러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워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수만 달러, 수천 달러를 조건 없이 내줬다. 쓸만한 차를 필요한 사람에게 거저 주는가 하면주위에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통장의 돈을 털어서 몇 백달러라도 주고야 마는 성격이다그렇게 해서 교민사회가 조금 더 아름다워졌고, 조금 더 사람 사는 세상이 됐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많은 사람 입을 통해 기독교가 개독교라 불리는 침울한 현 세태 속에서 그나마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기에, 기독교의 존재가 의미 있다고 믿는다. 몇 년 뒤면 연금 받을 나이가 되는 그는 아직도 청년 정신으로 산다. 얼마 전에도 사업을 하나 벌였다. 목적이 분명하다. 많이 벌어 좋은 일에 쓰겠다는 것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에 말에 의하면, 아쉽게도 그는 한 번도 사업에 성공한 적이 없다. 하는 족족 망(?)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단지 그때 그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했다고 주장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가 한 일이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쉬운 말로 하늘(하나님)이 알고 내가 알면 떳떳하지 않겠는가?

 

 그가 오클랜드에서 살다 간 흔적은 훗날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단지 어리석은 대중만 애써 모른 채 할 뿐바불사는 자기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영화 제목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싶어서이다.

 

 바불사는 ‘십만 달러의 사나이’라고도 불리운다. 그가 벌인 판의 기본이 십만 달러였기 때문이다.

 

시인과나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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