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쪽팔릴 일은 없겠구나…”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18> “나이 들어 쪽팔릴 일은 없겠구나…”

오문회 0 2035

나이 들어 쪽팔릴 일은 없겠구나…”

-김려령의 완득이를 읽고

 

 

 도완득 군 보세요.

 완득 군, 킥복싱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요? TKO 세 번 다 했나요? 배울 거 다 배우고, 세상이 나한테 뭐라고 못 하게 만든 뒤에, 종군 기자로 뛰어다닐 거라는 똑소리 나는 여친 정윤하 양은 아직도 매니저로서 잘 챙겨주나요?

 육 년 전 ‘완득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한국 서점가는 떠들썩했답니다. 삼 년 전,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고, 조폭 선생 똥주 역을 김윤식이, 조폭 꿈나무 완득 역을 유아인이 맡았을 때는 한국 영화판에 별이 떴다고 난리도 아니었죠. 정말 많은 사람이 웃고 울었어요. 그때 나는 외국에 있었지만, 가끔 한국에 다니러 와서 서점도 가고 DVD도 빌려 볼 수 있었는데도 왠지 마음이 끌리지 않더군요.

 이 아줌마가 어렸을 때 창비 아동 문고에서 나온 ‘몽실 언니’를 아주 재밌게 읽었거든요. 사실 재미있었다기보다 많이 슬펐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읽고 보니, 그게 마음이 메말라서 그런지 별 감동도 없고, 억지로 울음을 짜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래도 우울한데 더 불우한 이야기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안 봤어요. 신문이나 방송에 책 소개로 나온 것을 보니 난쟁이 춤꾼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완득 군을 가난하고 울분에 찬 청소년의 방황으로 소개해 놓았더군요.

 청소년 문학이니 당연히 희망적인 요소도 있어야 구색이 맞을 터여서, 말하는 것은 살벌해도 속은 따뜻한 선생님이 등장해 학생을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내용이다, 뭐 그 정도로 알고 있었죠. 그러고 보니 책 내용이 너무 빤하잖아요.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 문제아 학생을 선도하는 쿨한 선생님이 있어, 이 학생이 엇나가지 않고 잘 되었더라는 해피엔딩인거죠. 너무 교훈적이어 이 속세의 물이 잔뜩 든 아줌마의 눈에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저도 한 성깔 하는 아줌마거든요.

 그런데 한국 책이 궁한 뉴질랜드에 살다가, 우연히 완득 군의 책을 도서관에서 보게 되었어요. 슬렁슬렁 책장을 넘겼어요. 잘 넘어가데요왜냐면 헌금 얼마 받아먹었느냐며 똥주 좀 죽여달라고 하나님을 협박하면서, 안 죽여주면 절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까 얼씨구 하면서 잘 넘어갔죠. 이 속물 아줌마도 가끔 남편 월급 올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거든요. 완득 군과 나는 결국 비슷한 종류의 ‘자매님’들이었던 거죠.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같은 구역으로 배정받아 특별 교리를 공부해야 할지 몰라요.

 

 똥주 선생이 완득 군에게 “이 새끼야, 저 새끼야. 할 때마다, 친구들 앞에서 “야! 수급품 받는 게 쪽 팔리냐? 굶어 죽는 게 더 쪽팔린 거야. 새끼야.”라고 말할 때마다, 그리고 아버지가 지하철에서 마사지 채칼 파는 것을 떠벌렸을 때마다 거, 참 대책 없는 선생이네하고 혀를 끌끌 찼습니다.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아이를 이렇게 대하니 반항아가 안되겠냐 싶었죠. 하마터면 완득 군 손을 잡고‘자매님, 제가 중보기도 해드릴게요. 하나님 똥주를 죽여주세요.’할 뻔했답니다.

 

 하지만 완득 군도 알았죠? 곧 알았죠?

 “하-. 이 동네 집들 진짜 따닥따닥 붙어 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기에 딱 좋은 동네였다. 왜 숨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고, 사실은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두렵기 시작했는데, 그저 숨는 것밖에 몰라 계속 숨어 있었다. 그런 나를 똥주가 찾아냈다. 어떤 때는 아직 숨지도 못했는데 ‘거기, 도완득!‘하고 외쳤다. 술래에 재미를 붙였는지 오밤중에도 찾아댔다. 그래도 똥주가 순진하기는 하다……. 나를 찾았으면 자기가 숨을 차례인데, 내가 또 숨어도 꼬박꼬박 찾아줬다.

 이렇게 찾아내 준 똥주 선생님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다시 2학년 때도 담임이 된 똥주 선생님을 고마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도둑인 줄 알고 미들킥을 근사하게 날려 똥주 선생님의 갈비뼈에 금가게 해 놓고, 하나님, 잘못했어요. 똥주 좀 살려 주세요 하면서 울면서 똥주 선생님을 업고 뛸 때부터 알아봤죠. 그렇죠? 이 아줌마가 눈썰미 한 번 제대로죠?

 아줌마가 학교 다닐 때 똥주 같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봤어요.

 “한 번, 한 번이 쪽팔린 거야…… 니가 속에 숨겨놓으려니까, 너 대신 누가 그걸 들추면 상처가 되는 거야. 상처 되기 싫으면 그냥 그렇다고 니 입으로 먼저 말해버려.

 “니 나이 때는 그 뭐가 ?나게 쪽 팔린데, 나중에 나이 먹으면 쪽팔려한 게 더 쪽팔려져.

 어떤 격언보다도 중요한 이 말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덜 상처받았을 것이고 덜 창피했을 지도 모를 텐데 말이죠.

 

 또 책을 읽다가 완득 군이 대견하다 싶은 장면들도 참 많았어요“나, 난닝굽니다.(실은 남민구라고 말하는)”라고 말하는 허우대는 멀쩡한머리는 조금 떨어진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을 삼촌이라고 꼬박꼬박 존대하고, 삼촌의 앞말만 듣고도 뒷말까지 다 알아듣는 쓸데없는 재주까지 연마한 완득 군.

 기억에 없는 모유만 떼고 떠난 어머니. 앞니까지 벌어져 더욱 못나 보이는 가난한 나라, 베트남에서 온 어머니. 꽃분홍색 술이 달린 다 떨어진 단화가 눈에 밟혀 빈 반찬 통을 들고 돌아가는 어머니를 잡아 시장으로 가던 날, 자식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어머니에게 작은 리본이 달린 반짝거리는 검정 구두를 사 주고, 신발 가게 주인에게 팁까지 날려준 완득 군.

 알았습니다. 나는 알았습니다. 신발 가게 주인이 어머니에게 “저짝 사람 같은데.”라고 말할 때의 그 저쪽 사람에게 긋는 선이 싫었던 완득 군이, 그 내려다보는 말투 때문에 깎아 준 이 천원을 그냥 줘버리고 왔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긴 세월 쌓은 살림 내공으로 백숙쯤이야 얼마든지 하고도 남는 완득 군이 어머니에게 전화해 백숙하는 법을 물었을 때도 알았습니다. 이제 완득 군은 어머니를 찾았구나. 이제 완득 군은 상처받지 않겠구나. 나이 먹어서 쪽팔릴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포츠하고 싸움을 다른 거야. 이게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그 한 장 차이를 넘지 못하면 그냥 쌈꾼인 거야.”라고 킥복싱 관장님이 말씀하셨죠. 세상 살아보니 모든 게 종이 한 장 차이뿐이더군요. 매너와 무례함도, 자신감과 건방짐도, 행복과 불행도, 장애인과 예비 장애인일 뿐인 우리도, 외국인 노동자와 자국 노동자도 그저 종이 한 장의 비껴감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차별과 편견이 생깁니다. 그것 때문에 세상에 그늘이 지고, 완득 군은 숨어다녀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완득 군!

 이 멀리서, 이름도 모를 이 아줌마가 장성한 완득 군에게 주책없이 감히 한마디 할게요.

 “아버지와 내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이 열등감이 아버지를 키웠을 테고 이제 나도 키울 것이다. 열등감 이 녀석, 은근히 사람 노력하게 한다.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영 나쁜 것 같지도 않은 게 딱 똥주다.”라고 완득 군이 말한 것처럼, 그 열등감이 완득 군에게 우월감을 주는 그 날까지 버티고 버티시길 바랍니다. 내일 당장 해가 뜰 거라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이 아줌마가 살아보니 그늘진 곳에 볕 들기가 그리 만만치 않더라고요. 허나 폐닭만 먹다 보니 보들 거리는 공장 닭은 퍼석하고 자꾸 끊어져서 맛없다고 그랬잖아요. 다 늙어빠진 고무 ?는 것 같은 질긴 폐닭의 맛에 익숙해진 것처럼 버티고 익숙해지길 바랍니다. 그럼 남들은 모르는 쫄깃쫄깃한 그 참맛을 발견하게 될 날이 꼭 있을 거예요.

 

 “우리 서로 인정하고 살자. 너는 내 춤을 인정해주고, 나는 네 운동을 인정해주고, 우리 몸이 그것밖에는 못 하는 모양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한 번 인정하기 시작하면 덜 쪽팔리고 그제야 비로소 리듬을 탈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아마도 난닝구 삼촌의 자이브가 최고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난닝구 삼촌이야말로 진심으로 리듬을 타고 있었으니까요.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리네요. 몽키 몽키 몽키, 몽키 매직! 몽키 몽키 몽키, 몽키 매직! 그리고 그 옆집에서 똥주 선생님의 말도 들립니다.

 “완득아! 완득아 새끼야! 

 추신: 물컹물컹한 토마토에 입을 댄 것 같다던 정윤하 양과의 첫 키스 뒤, 완득 군의 비실비실 삐져나오던 웃음에 나도 웃음이 났습니다. 개천이 자꾸 나를 웃기네, 왜 오늘따라 종군기자라는 말이 다 웃겨. 오다가 꽃 냄새나는 껌을 ?

었나? 이히히… 이번엔 홀딱 벗은 생닭이 날 웃기네, 푸하하하.

 첫 키스는 달콤하진 않았지만, 기분은 좋았죠?

2014 5

난닝구가 아니라 남반구, 뉴질랜드에서

 

간서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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