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무늬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20> 인연의 무늬

오문회 0 2116



사람들은 날마다 무슨 꿈으로 살고 있을까? 전에 없이 내 주위의 사람들을 찬찬이 생각해본다. 뉴질랜드에 온 이후 초기에는 한동안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에서 스치고 만나고 헤어지고 있는 것이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는 모양새 같기도 하다.

 하늘이 파랗고 환할 때에도 흐리고 어두울 때에도 그 색깔과 느낌이 다를 뿐,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이동하는 것은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처럼 보인다.

 예전에도 사람에 대해, 만남에 대해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저 사람은 나와 왜 만나게 된 것인지 그것이 무슨 관계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 부지런히 뒤젂여 보곤 한다.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저마다 만나는 사람들의 수는 좀 다르겠지만 보통사람들이 사는 동안 만나는 숫자는 일단 한정적일 수 있다.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그 첫째 이유일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시간과 공간의 우연이 적다. 우선 서로 공통점을 찾아야 편안함을 느끼고 친구가 되는 과정이 아닌가.

 외국에서 산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일지 모른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보이지 않는 점선이 있다. 하지만 한국 사람끼리 만나 한국말로 얘기하면서 소통이 되지 못할 때의 답답함 또한 후회로 돌아오고 만다. 만화책을 보는 게 낫지. 음악이나 듣는 게 낫지. 갑자기 뜨거운 사막에서 맞는 바람같이 후덥지근해지기도 하다.

 

 그나마 알고 지내는 몇몇 사람들은 사정권 밖에 있다. 다들 멀찍이 떨어져 산다. 한적한 동네에 사는 것에 대해 남편에게 불만하였더니 내 동네운전면허 실력을 구박한다. 내가 갈 수 있으면 멀지 않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친구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나타나는 순발력 넘치는 번개였는데…….

 하지만 이 모든 이유는 이유일 뿐이다. 무엇보다 내 성격 탓이다. 내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까탈스러운 성격이 사람을 쉽게 만나지 못하는 큰 탓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천천히 꼭꼭 ?어 평생동지 같은 친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이렇게 골치 아픈 사람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하지만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다 보니 그런대로 적응이 되어 불편하지는 않다. 아니 사실은 더 홀가분하다. 혼자 노는 일!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작가의 표현대로 아이들은 무럭무럭 크고, 어른들은 무럭무럭 늙고, 마음은 한해 두해 지나면서 그렇게 건조해왔다. 어제도 살았으니까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 거라는 습관으로 지내오지는 않았나.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한다. 마음은 밀려오는 파도에 젖는 모래, 같다.

 

 어느 날 문득 오클랜드문학회(오문회)라는 괴물이 찾아 왔다. 가끔 보는 교민신문에 수필문학교실을 한다는 광고가 있었다. 영어공부도 아니고 요리강습도 아니어서 신선했다.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영어나 요리일 테지만 실용적인 것은 늘 거부반응부터 인다어떨까 따져보았다.

 우선 시간이 잘 맞았다. 월요일이 아닌 것도 오전 시간인 것도 괜찮았다. 그러나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걸렸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들뜨기 시작했다. 머리 굵은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니 끈적끈적해지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번잡함을 미리 질색하고 싶진 않았다.

 

 수필문학이라는 단어가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가슴에 꽂히지는 않았다. 문학이라는 단어와 민주주의라는 말은 명료해서 좋다. 문학이면 문학이고 민주주의이면 민주주의인 것이지 이건 수필문학으로 한정하는 것과 한국식으로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의 뜻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는 첫째 주였지만 강의는 이미 둘째 주였다. 강의는 스폰지에 물이 빨려드는 듯 학생 모두를 짧게 빨아들였다. 선생님은 더 가깝고 적확한 표현을 찾으려 애를 썼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밤을 낮처럼 책 속에 묻혀 산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약속에 걸리는 게 많은 나는 요령있게 약속을 해놓고 나는 강의가 있는 목요일을 열심히 기다렸다. 하지만 목요일마다 나를 기다리는 것들은 따로 있었다. 모처럼 하고 싶은 것을 찾았는데 정작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아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그렇게 문학 강의는 한 주 한주 지나가고 말았다. 아쉽고 야속한 기분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가끔 돌이켜 보며 내게 물어본다. 또 한 번의 기회가 돌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직까지 답은 같다. 번번이 출석하지 못한 문학교실이지만 그 때마다 최선을 다해 내린 결정이었으므로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지나간 버스를 언제까지 그리워할 것인가? 그만큼의 길이밖에 되지 않는 인연이려니 하기로 했다. 거기에도 아직 모르는 다른 뜻이 있으리라 믿으며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묻어 놓아야지…….

 사실 무슨 모임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동호인회의 성격의 오문회는 아직도 조금은 낯선 존재다. 내게 처음 오문회는 몇 명의 아이들이 저만치에서 하고 있는 연놀이였다. 호기심에 가득 차 띄울 연도 없는 데 눈을 떼지 못하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르는 연놀이에 마음이 부풀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처럼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던 나.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다 신기하니까, 날아다니는 모든 것에는 생명이 있으니까.

 

 이렇게 만난 오문회는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같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신 적은 거의 없는데 헛헛한 곳을 채워 주는 오랜 친구같이 다정하기도 하고 같은 사무실에 다니던 동료 같기도 하다. 오랫동안 처박아 놓아 아예 깡그리 잊고 지내던 책들을 침대 옆으로 옮겨 놓았다. 한동안 책과 소원하던 지나간 시절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이, 읽고 싶은 책들을 탑처럼 쌓아 놓았다. 이것저것 마셔 보아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던 여름날 마시는 따뜻한 보리차처럼 조금씩 내 삶의 갈증을 달래 주기를 바라면서 쌓아 놓은 책더미에 마음을 기대어 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겉만 알던 사람들,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아이의 친구들의 엄마들, 저마다 다른 거리와 길이로 만났던 사람들……. 모두 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만남은, 수채화 물감이 되기도 하고 더러 풍경이 되어 주기도 한다.

 삶이 한 편의 베를 짜는 일이라면, 오문회와의 만남은 내가 짜고 있는 베에 새로운 인연의 무늬가 되어주고 있다내 삶의 씨줄과 날줄이 스칠 때마다 내 속에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운무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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