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35> 옛날 영화

오문회 0 2532

지난봄 한국에서의 여행 중에 정말 특이한, 아니 특별한 분을 만났습니다. 시인과 석수님의 친구 중의 한 분이었고, 무등산 게장 정식을 함께 먹고 난 후 카페에서 환담을 나눌 때였습니다. 카페의 테이블은 괴목이었고, 벽에는 포스터나 영화에 관련된 인쇄물을 붙어있었습니다.

그 분이 일어서서 벽에 붙은 옛날 영화의 스틸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이것이 무슨 영화인지아느냐고 모두에게 물었습니다. 무성영화의 스틸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약간은 희극적으로 보이는 오래된 흑백사진이었습니다. 배경이나 분장, 의상이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의 무대 같았습니다. 모두들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핀잔을 주며 소파에 등을 부리려고 할 때였습니다.

으음, 1930년대 맥베드의 한 장면인데 그 남자배우는 로렌스 올리비에야. 다시 목을 돌려 쳐다보기는 했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고, 되물어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시인과 석수님이 그 친구를 소개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영화에 심취해왔으며, 꽤 조예가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레 화제는 영화로 돌았고, 그 친구가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정말 전문가 이상으로 아는 것이 많았습니다. 한국영화에서 외국영화까지, 수많은 영화배우들까지 거침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영화 중에 그래도 가장 잘 된 영화는 뭐니뭐니해도 대부야. 그 중에서도 알 파치노가 애송이로 나오는 일편 말이야.

다들 대부(代父)에 빠져들었습니다. 갑자기 마론 브란도처럼 다리를 꼬았고, 두두두두 기관총을 갈겼고, 엄지손가락으로 중절모를 밀어 올리는 시늉을 하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습니다.

문득, 알면 얼마나 알까 하는 심술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럼,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보셨습니까?

제 또래치고 그 영화를 본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워낙 재미가 없어서요.
그 친구는 담담하게, 조자룡이 헌 창 버리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출연했고요. 감독은 시드니 폴락이었습니다. 첫 장면의 첫 대사가 아마,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그런 내용일 겁니다.

저는 조용히, 그리고 얌전히 고개를 숙여 보였습니다. 주연배우와 감독까지는 인정하겠는데, 첫 장면의 첫 대사라니요.

오늘, 시인과 나님의 책방에 갔습니다. 일식집에서 벤또로 점심을 먹고 그 옆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려왔습니다.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PLAY MISTY FOR ME)라는 영화의 OST였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얼굴이 전과 같지 않은 알랑 드롱이 쟝 가방과 함께 권총을 들고 나오는 것처럼, 카우보이로 본전을 다 뽑아 먹다시피한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라디오 음악프로 디제이로 나오는, 각진 레이벤을 쓰고, 지붕 없는 스포츠카를 운전하여 석양 무렵의 태평양 해안도로를 달릴 때 깔리는 음악이었습니다.

낮은 톤의 여자 가수가 부른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라고 기억됩니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그때는 왕유의 외팔이 시리즈의 검술과 이소룡과 성룡의 권법을 거친 후였고, 괜스레 눈썹 사이에 내 천(川)자를 그리며 그 무거운 에밀의 양장본을 옆구리에 끼고 다닐 때였고, 가뜩이나 없는 돈에 러브 스토리, 위대한 개츠비, 태양은 가득히,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들을 찾아다니던  때였습니다.

그날 종로에서 그 영화를 보고나서 소방서 건너편 어느 지하 다방으로 들어간 저는 레지가 가리키는 대로 찰싹 붙어 앉은 한 쌍의 바퀴벌레와 합석했고, 선불을 내고 커피를 주문했고, 붕어처럼 입을 내밀어 담배연기로 도너스 다섯 개를 만들었고, 엽차를 한 잔 더 달라고 하여 레지를 귀찮게 했고, 카운터 아가씨 몰래 테이블 위에 늘어진 등갓에 담뱃구멍 두 개를 뚫었고, 소음과 담배연기 속에 죽치고 앉은 여자들과 조금 전에 보았던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애인을 비교했습니다.

그리고 빨랫비누로 초벌 감고 여동생이 감추고 쓰는 샴푸로 헹군 머리카락을 힘껏 젖혀 보이고 어깨를 삐뚜름하게 하여 다방을 빠져나온 저는 주머니 속에서 동전을 헤아리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로수 아래 땅콩을 파는 노점의 카바이트 불들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고, 저는 혼자였습니다.

저는 그때도 낭인이었던가 봅니다. 지식도 없고 지성도 없는, 성격조차 지 랄 같은.......


작업실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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