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다

손바닥소설


 

<글의 향기를 나누며 41>참 이상하다

오문회 0 2215

참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게 아니고 화가 난다. 쟈넷 프래임의 자서전 '내 책상위의 천사'를 읽으며 생긴 의문이랄까 절망감은 천재를 알아버린 평범한 사람의 슬픔 일 것이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너무 행복한 독서였고, 많이 위로받았고, 정말 많은 걸 배웠지만 글 한 줄이라도 써 보려고 했던 미란으로서는 이건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라는 아픈 깨달음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슬픈 의문중의 하나는 '왜 나는 어린 시절 기억이 그토록 빈약한가'이다.

60세 넘어 자신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아야겠다 해서 3년여에 걸쳐 쓰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자서전은 일단 그 정확한 기억력과 연관되어 있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자서전은 대략, 자연과의 나, 세상 속의 나, 그리고 '거울궁전'이라 묘사되는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든 기억은 지금 옆에서 보듯 살아서 움직이며 자연 속에, 가족 속에, 그리고 그녀의 어린 내면에 들어와 다시 자리매겨진 어떤 관념으로 아로새겨지는 것이다. 심지어 두 세 살 적부터의 기억들, 그녀를 둘러 싼 집 주변의 자연 풍경, 나무들, 풀들, 새, 집에서 기르던 젖소, 고양이, 그리고 하늘, 구름, 바람까지도..... 그 어린 쟈넷이 우리가 다 아는 뉴질랜드의 바람 윙윙부는 날, 삶의 슬픔을 느꼈다는 것이며, 동생을 데리고 언니오빠와 내 애기라고 다투는 것이 힘들어 숲 속의 아늑한 장소를 발견하곤 '자신만의 소유'에 대한 첫 번째 기쁨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천재라는 말만 들었지, 실제 주변에서 천재 구경을 해 보지 못한 미란에게 막연히 천재는 '박경리' 선생님일 거라고 생각해 왔다. 거의 십 년을 자기 전 침대에 올라 갈 때면 '토지' 1권을 들고 올라가 주로 '용이'와 '월선네'의 애틋한 사랑얘기만 읽었다. 마치 엄마가 자기 전 들려주는 자장가 같은 것, 아님 동화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토지 16권이 다 있었지만 남자들이 나와서 시국 얘기하는 부분은 읽기도 힘든 부분이었고, 용이, 월선, 임이네가 잡고서 놓아주지 않아서도 그랬다. 그리고 토지를 손에서 뗀 지가 10년이 넘었다. 다시 붙잡으면 또 다시 그 세계에 붙잡힐 것이고 밤마다 침대 옆에 오로지 토지만 있을 것이고 천재 앞에서 조용히 독자 노릇만 할 것 같아서 마음속의 비밀창고에 넣어 두고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명의 천재에게 붙잡혔다. 그러나 이 천재는 참 친절하다. '토지'와 달리 자서전이기에 이해가 쉽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심지어 쉼표 하나, 흘려 보낼 부분이 없다. 살아있던 사람, 조금 일찍 살다 가 버린 사람... 아기였던 때부터 죽는 날까지 언어가 무엇인지 알고, 그 언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자신을 바쳤던 사람.... 무엇보다 솔직하고 가난하고 한치 앞을 내다 보지 않는 욕심없음에, 또 한편 그로인한 자유로움에 아, 이것이 작가의 사람이구나 하고 역시 박경리 선생님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녀들의 사람의 가치를 자리매김하는 방법,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는, 쉬임없이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뭐지?뭐지? 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30년을 먼저 살다 간 그녀의 책이 지금 도서관에서 먼지를 묻은 채 시대의 뒤편에 서 있다 해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미란처럼 신의 도움으로 그 책을 읽게 될 것이고, 생의 가장 큰 위로자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사함과는 별도로 속상함과 한숨 속에 미란이 요 며칠 곰곰히 생각해 본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었다.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세상을 느꼈던 때는 언제였나? 하는 것에 연관된 것이다.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하는, 즉 어린 미란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별반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되살려보려 한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낸 기억의 일부는 이런 것이었다.

종기가 나서 신중병원에 가서 머리에 팔뚝만한 주사를 맞은 일, 그 주사를 보고 악을 악을 쓰며 알고 있는 욕을 다 하다가 막상 주사가 아프지 않아 울면서도 으아해 하며 맘을 놓던 일, 조금 후 엉덩이에 놓은 아주 작은 주사가 너무 아파 또 한 번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던 일, 동생을 낳으러 간다며 밤에 택시 타고 근처의 병원으로 엄마가 떠나던 일, 길 건너 지나가던 솜사탕장수를 눈으로 쫓으며 발을 동동거리던 일, 큰 길 건너 있던 산에 동네언니들과 올라가 놀던 기억들, 거기서 만난 어떤 아저씨와 잠자는 척 하늘 놀이를 하고 놀다가 갑자기 무섬증이 나서 그 산길을 붕붕 날라 도망쳐 나오던 영화 같던 장면들, 안채에 살던 주인집 안방에서 언니오빠들이 하던 화투를 보며 좀 끼어주엇으면 하고 강아지처럼 옆에서 계속 턱을 쳐들고 있던 일, 오빠들이 점잖게 부르던 안다성의 '바닷가에서'의 근사하던 곡조, 집 동네에서 어느 오빠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 오다 깜깜한 길에서 오빠가 마구마구 얼굴에 뽀뽀하고 비비던 일, 그리고 엄마 앞에서 시치미를 뚝 떼서 왠지 모를 슬픔에 일러 바치지 못한던 일, 동네 잔치 있던 날, 커다란 집 마당에 놓여진 기계구멍으로 하얗고 굵직한 가래떡이 한없이 나오던 일, 그 가래떡을 다리 사이에 놓고 '내....... 봐라' 하며 마구 흔들던 주책스럽던 어떤 아주머니... 다들 깔깔 웃던 일...

그 시절 단순하던 먹거리 속에 모든 것이 첫사랑처럼 온 몸의 세포속에 아로새겨지던 시절, 밥에 비벼먹던 병아리색의 빠다가 있었고, 아버지가 국방색 미제 깡통을 따고 조금씩 맛보여 주던 베이컨이 있었다. 모든 것은 지금처럼 흐드러지게 넘쳐서 다 그게 그것 같은 것이 아니었고, 남의 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거나 눈치 보며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 때부터 '남의 떡이 커 보인다'와 '그림의 떡'이 가장 가까운 속담이 되었다.

그리고 무지개떡, 어린 시절 무지개는 실제적으로는 본 적이 없다. 슬프게도, 다만 무지개는 미란이 6살이었던 어느 날, 그러니까 10월이다. 바로 밑에 남동생 돌날 무지개떡이란 걸 본 것이었고, 그 전까지 색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던 그녀에게 그 무지개떡의 연하고 알록달락한 색깔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고운 색들이 착하게 줄 서 있던 그 떡은 먹기에 너무 미안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태어나서 6년이란 세월을 한 동네에서 살앗는데,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난한 그 동네를 떠나 피란갔는지, 아님 미란이 학교 앞에서 사다 박스에서 키우곤 하던 병아리 처럼 방안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어쨋든 그래서 기억나는 첫 색깔이 빈약하게도 여섯 살의 무지개떡인 것이다.

매일 뛰어다니던 동네 앞산 그리고 담장을 넘어서 놀던 철도역 변 잡초 우거진 풀밭은 언제의 기억이란 것일까? 근처에 있던 시립대학교 교정 땅바닥을 검게 물들이던 버찌들이 지금도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남아있으되 그 버찌전에 있었을 그 화사한 벚꽃의 기억이 없으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았을까? 아직 건너편 동네에는 초가집도 드믄 드믄 있었는데, 당연히 잇었어야 할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는 어딜 갔다는 걸까?

쟈넷 프레임이 2살 부터 바라보고 의식하고, 때론 슬픔도 느꼈다는 세상이 미란에겐 없어서 미란은 슬픈 것이다.


오미란_오클랜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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