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손바닥소설


 

이 가을에

일요시사 0 2199

요즘 며칠 동안의 일을 돌이켜 보다가 나도 가을을 타는 모양인가한다.

지난 주 강아지를 대동하고 헤랜스 빌까지 드라이브하고 온 일을 시작으로 홀로 가을과의 관계맺기에 돌입했다.

첫 번째 일은 무심히 파 한 단 사러 들렀던 야채가게에서 느닷없이 열무와 얼갈이를 사서 물김치를 담근 것이 되었다.

두 번째 일도 몇 달째 김장김치만을 먹던 남편과 아들이 예술이다라고 외치는 바람에

좋다, 그 자세라면 나도 뭔가를 보여주리라하고 오이소박이를 선보였다.

하루 만에 삼분의 일이 없어졌다.


오늘, 배추와 무를 넣고 사과와 양파 붉은 고추등을 넣은 물김치가 다시 엄정한 심사평을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갑자기 바빠진 부엌이다.

그간 잊혀졌던 온갖 그릇 및 도구들이 최선을 다해 존재의 이유를 뽐내었다.

여름 내내 바닷가에 나가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사랑했었다.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던, 평등하게 공유했던 그 여름이 슬그머니 가을에 자리를 내 주었다.

왜일까, 이상하게 모든 게 조용하다.

다들 어디 갔나?

시계도 느릿느릿 시간을 내 보내고 있는 것 같고,

공기조차 사색하고 있는 것 같다.

괜히 기분이 그럴싸하다.


커피빛 아픔이란 유치한 시를 지었던 학생 때나 별로 변한 것 같지 않다.

기온이 얼마 내려간 것 같지 않은데 찬 음식만을 찾던 여름과 달리 따뜻한 음식이 그리워진다.

집에서 만든 음식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솜씨좋으신 시어머님께서는 논게를 사다 간장 부어 항아리에 넣어 두셨었다.

마늘이랑 생강 저며 넣고 실고추랑 참깨를 노란 장위에 얹으셨다.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밥을 먹을 때면 딱 두 마리만  꺼내셨다.

노란 국화꽃같던  게장뚜껑은 언제나 시아버님과 외아들인 남편 차지였다.

일곱 번 비벼먹고 사위 준다는 그 게뚜껑이었다.


미란은 다행히도 사랑받는 아내여서 한 세 번 슬쩍 비벼먹고 난 것을 건네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시어머님 외출하셨을 때  한 마리 꺼내어 한을 푼 기억이 있다.

밖을 내다보며 급하게 먹어 치우느라 그 날 물을 엄청 들이켰었다.

그 게가 여기 있으면 숨겨둔 쌈지돈이라도 꺼내어 넉넉하게 담그고 싶다.

누가 온다면 붙들어 앉혀놓고 금방 지은 차조밥에 물김치, 게장만 꺼내어 대접할 것이다.

괜히 흐믓해진다.


고맙다

가을아

소녀로, 새 색시로, 엄마로 돌아가게 해 주었구나.

할머니만 되면 되겠네.

이 계절에 얼마나 더 부엌이 바빠질 지 은근히 기대된다.


  오문회원 오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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