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마지막 4개월… '왕과 사는 남자' 뉴질랜드 상영 예정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비운의 왕이자 어린 왕. 조선조 6대 왕 단종은 사극에서 유약하고 앳된 모습으로, 계유정난의 ‘병풍’처럼 등장하곤 했다. 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는 다른 접근을 꾀한다. 서슬 퍼런 왕위 찬탈극이 이미 끝난 시점에서 극은 시작한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건 노산군으로 강봉된 이홍위(박지훈)의 파리한 얼굴이다. 영화는 훗날 단종으로 불리는 그가 강원도 영월 산골 마을로 유배를 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16세의 이홍위가 귀양지에서 보낸 시간은 불과 4개월이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니만큼 그가 어떤 나날을 보냈는지는 자세히 기록된 바가 없다. 다만 실록에는 ‘엄흥도’라는 이름이 전한다.
엄흥도는 왜 자신이 해를 입을 수 있는데도 죽은 상왕의 시신을 몸소 수습했을까. 장 감독은 ‘엄흥도(유해진)’가 이홍위에 대한 충심을 쌓아갔을 몇 개월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채워넣는다.
무거운 역사가 소재지만 극에는 장 감독 특유의 발랄함이 묻어 있다. 그가 상상한 엄흥도는 선비 같은 충신이 아닌 그저 마을 사람들 배를 불려주고 싶은 세속적인 마을 촌장이다. ‘양반이 유배 오면 그가 훗날 복권될 것을 대비해 사람들이 보낸 선물로 마을도 덩달아 부유해진다더라’는 말에 혹한 그는 영월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군수(박지환)에게 아부한다.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은 촐랑대는 말투로 ‘우리 마을이 유배지가 되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코믹하게 살려낸다.
장 감독은 지난달 21일 언론 시사회 이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미디어에서) 한명회는 왜소하고, 톤이 높거나 삐딱하고, 걸음걸이도 이상하게 그려졌지만, 당대 기록에는 그런 묘사가 없더라”며 “최고 권력자이며 세조를 왕위에 앉힌 이가 가벼운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한명회’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이처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참신한 재해석이 빛나지만, 극의 뼈대인 이홍위와 엄흥도 사이 유대감을 쌓아가는 서사가 촘촘하지 않다는 게 아쉽다. 웃음 요소를 넣기 위해 엄흥도 캐릭터가 지나치게 가벼운 성정으로 설정된 탓에 후반부 진중한 모습으로의 변모가 잘 와닿지 않는다. 박지훈과 유해진의 애끓는 연기 덕에 엉성한 극은 어찌어찌 역사가 예고한 종점으로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