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여러 난관들을 만날 때 (마 14:13-21)

기독교


 

삶에서 여러 난관들을 만날 때 (마 14:13-21)

 

많은 사람들은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한 대통령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소아마비에 걸려 큰 고통을 겪은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베토벤은 음악의 성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만든 합창 교향곡은 54살에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남모르는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오병이어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오병이어 기적만큼 놀랍고도 감동적인 기적이 거의 없습니다. 오병이어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은 기적입니다. 놀랍고도 감동적인 기적이었지만, 이 기적이 있기까지는 많은 난관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려 3번의 난관들을 만나셨고, 3번의 난관들을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맞이하신 난관이 무엇이며 예수님이 그것을 어떻게 이기셨는가 살펴보길 원합니다.

 

1. 사람으로 인한 난관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긍휼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을 상대방이 몰라줄 때 우리의 마음은 어려워집니다. 특히 내가 타인을 위해 양보하고 손해 보았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몰라줄 때 마음이 상합니다. 또한 위로가 필요한데 위로를 받지 못할 때 마음이 어려워집니다. 이렇듯 사람으로 인한 난관은 나로 하여금 힘이 쭉 빠지게 만들고 주저앉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난관을 깊이 경험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14:13)”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친척이었던 그는 헤롯에게 잡혀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습니다. 요한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은 괴롭고 복잡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셨기 때문에 위로와 쉼이 필요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인파가 대단했습니다. 특히나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느라 피곤하고 진이 빠지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괴롭고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빈들로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고 예수님께 뭔가 더 얻고자 몰려갔습니다.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14:13)”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그 사람들이 싫어지고 미워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난관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14:14)” 사람이 싫어질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겨내셨습니다.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사람으로 인한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산 너머 산의 난관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자기희생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산 너머 산이다이라는 속담은 갈수록 어려운 지경이 됨을 말하는 속담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난관을 맞이하셨습니다. 자기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을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난관을 넘어서자 또 하나의 난관이 찾아왔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루 종일 굶은 것입니다. 수만 명의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 제자들은 이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갑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14:15)” 예수님께 나아간 제자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내어 놓습니다. 모인 사람들을 다 동네로 보내서 음식을 사 먹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예수님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낮 시간 내내 큰 무리라는 산을 넘었습니다. 겨우 그 산을 넘었는데 더 큰 산이 그들 앞에 놓여 있던 것입니다. 엄두가 나질 않자 예수님, 이들을 이제는 동네로 보내서 사 먹게 하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것까지도 하라라는 해결 방법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14:16)” 마을로 보내지 말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산 너머 산이라는 난관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희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굶주림의 난관을 맞이했을 때 그마저도 감당하는 완전한 자기희생을 보이셨습니다.

에스더는 유다 백성들이 바사 제국에서 살 때 유다인으로서 왕후가 된 사람입니다. 당시 바사에는 하만이라는 2인자가 있었는데, 그는 에스더의 사촌오빠 모르드개를 미워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증오한 나머지 유다인 전체를 한 날에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산 너머 산의 난관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후인 네가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에스더는 당신은 가서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해 금식하소서. 나도 내 시녀와 더불어 금식하고 왕에게 나아 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고 자기희생을 결단했습니다. 그녀의 결단으로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일하셨고 그 난관은 해결되었습니다. 인생에 있어 산 너머 산이라는 난관을 만났을 때 자기희생이야말로 난관을 뚫는 능력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자기 부족의 난관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 가져감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셨을 때,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셨을 때, 아마 제자들은 매우 난감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도 명령을 수행하고 싶지만 수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맞이한 마지막 자기 부족의 난관이었습니다. 앞에서의 사람들의 난관’, ‘산 너머 산의 난관의 두 외적인 난관과는 다르게 이 난관은 내적인 난관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자기 부족의 난관에 부딪힌 대표적인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고자 부르시자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본래 말을 잘 못합니다.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사람입니다.” 이런 식으로 네 번이나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모세는 , 주여 보낼 만 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노를 발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부족의 난관을 넘어서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부족의 난관 앞에서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자기 부족을 그렇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고 위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결하는 비결은 예수님께 그것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14:18)” 그것은 제자들이 이거 밖에 없다고, 한없이 부족하다고 여긴 오병이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태산과도 같은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한없이 부족해 보이고, 내가 가진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길 때 주님은 그 자기 부족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병이어는 작지만 그것이 주님 손에 들리면 거기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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