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0) 하나님이 하시는 일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0) 하나님이 하시는 일 <요한복음 9:1~7>

어느날 예수님께서 지나시는 중에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은 자기의 죄 때문인가요? 부모의 죄 때문인가요?” 당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장애나 심각한 병에 대해서 무조건 죄의 문제로 연결을 했습니다. 이건 상당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3절에 말씀하시죠. “이 사람의 죄 때문도 아니고,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잘못된 편견을 깨뜨리시며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눌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로, 열림입니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곳은 실로암이라는 연못입니다. 말이 연못이지, 정확히 말하면 물 저장소입니다. 구약의 역사 속에 보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남유다의 예루살렘은 천혜의 요새입니다. 동서남은 골짜기와 절벽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북쪽만 잘 막으면 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성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성 안에 우물이 없는 거예요. 저들은 기혼샘의 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하는데, 이 샘은 성 밖에 있습니다. 평소에는 상관없지만, 전쟁이 나서 포위가 되면, 물을 길으러 갈 수가 없어서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기혼샘의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이는 공사를 진행합니다. 기혼샘을 앗수르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아예 막아버리고, 그 아래로 지하수로를 파서 예루살렘 성안으로 물을 끌어들이는데, 양쪽에서 서로 파들어갑니다. 수로의 총 길이는 533미터, 공사가 힘든 암석지대입니다. 양쪽에서 파고 들어가 가운데는 만나게 합니다. 경사를 너무 급격하게 하면 성밖에서 물소리가 들릴까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높이 차이를 30센티미터 정도로 해서 물이 천천히 흐르게 합니다. 자, 2,700년 전의 기술로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바위를 깨는 서로의 도끼가 딱 부딪히는 순간, 막혔던 벽이 허물어지고 열리는 그 순간, 물길이 쫙 열려져 흐르는 그 순간, 그 감동이 어떠했을까요? 더불어 오늘 본문의 한 맹인이 눈에 짖이겨진 진흙을 씻어내는 순간, 일평생 닫혀있던 눈이 번쩍 열려지게 됩니다. 처음 마주하는 햇살, 아름다운 나무, 하늘과 구름, 그 감격이 어떠했을까요? 그야말로 열림의 감격입니다.

  

날때부터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인생의 출발 자체가 어둠이었습니다. 일생을 어둠 속에, 캄캄한 밤을 지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의 눈이 열려지게 됩니다. 어둠이 빛으로 바뀌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에도 말씀합니다.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러한 역사가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닫혔던 눈이 열려졌습니다. 어둠 속에 갇힌 눈이 열려져 밝은 눈이 되었습니다. 그 심령이 열려져 빛 되신 주님을 향해 고백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믿음이 열리고, 삶이 열려집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우리 자녀손들의 앞길에도, 열어주시는 주의 손길이 임하시기 바랍니다. 열린 눈으로, 열린 마음으로,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세상 가운데 빛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깨달음입니다. 


오늘 실로암에서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거죠. 이로 인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집니다. 두 가지 쟁점입니다. “눈을 뜨게 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다.” “안식일을 범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느냐?” 바리새인들은 지금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거룩하게 지킨 것은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일에 대한 자기들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들이 믿은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자기들의 믿음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이 수호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 대한 자기들의 해석이었습니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다른 것으로 향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눈앞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바라보면서도 인정을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던 중에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 말합니다. “참 이상하네요.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했는데, 어찌 그런 큰 기적의 역사를 일으킨 사람에 대해서 당신들처럼 배운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를 못하고 이러고 있습니까? 나는 잘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자가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으면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오늘 맹인이었던 사람은 일생을 한 번도 앞을 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에 울분과 원망이 많았을까요? 주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부모의 죄 때문에 저런 일을 당한다.” 무분별한 정죄와 비난 속에 자신도, 부모도 엄청난 상처 가운데 일생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사람의 죄도 아니다. 부모의 죄도 아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평생을 짊어지고 있던 죄의 짐을 벗겨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증거할 주인공이다.” 눈이 열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증거하게 됩니다.  

 “실로암” 그 뜻은 “보내다.”입니다. 기혼샘의 물을 보냈기에 “보내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시어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맹인을 보내어 하나님 하시는 치유의 역사를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깨달아 알고,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증거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각인입니다. 


각인은 도장을 새긴다는 뜻입니다. 오리나 거위, 닭 같은 경우에는 알에서 부화해서 처음 눈으로 보는 대상을 부모로 인식하고 따라다닌다고 하죠. 이걸 “각인현상”이라고 합니다. 각인현상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인 콘라트 로렌츠에 의해서 연구된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조류에게만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너무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내 에너지가 다 소진되는 것을 느꼈으면, 그 다음부터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게 각인이죠.  

  

오늘 한 맹인은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 시람은 절기 때마다 정결예식을 위해 실로암 못에 몸을 담급니다. 그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할까요? “예수님께서 나를 실로암으로 보내셨지. 내가 세상을 처음으로 바라봤던 곳이 이 곳 실로암이었지.” 실로암에 몸을 담글 때마다 눈이 떠지는 감격이 생생하게 마음 속에 되살아날 것입니다. 

 

 2,700년전 예루살렘성에서 직접 곡괭이를 들고 수로를 만들기 위해 굴을 파던 이들과 지금 실로암 연못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은 각인입니다. 새겨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죠.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노라.”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이 바울의 전도활동 속에 새겨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함께 맺어지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이 역시 내 신앙의 삶 속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우리를 위한 사랑, 그 희생의 흔적을 새기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흔적을 떠올리며, 더 힘있게 믿음의 삶을 살고자 결단하며 나아갑니다. 우리 안에 각인된 은혜의 흔적을 되새기며, 감사함으로 주를 위해 살아길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도 이제 내 삶에 새겨진 주의 은혜의 흔적에 합당한 삶의 흔적을, 내 삶 속에, 또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새겨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 하시는 일을 증거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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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9-17 15:49:38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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