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6) 내가 걷는 이 길에

기독교


 

뉴질랜드 광림교회 주일설교 (126) 내가 걷는 이 길에<여호수아 7:1~5; 8:1~2>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적의 성취를 위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약속의 땅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함께 동행한 아간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그 길을 걸어갑니다. 이로 인해 함께 걷는 모든 이들이 패배의 길로 가게 됩니다. 여호수아도 알지 못했고, 다른 백성들도 알지 못했습니다. 욕심을 부린 아간 역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이러한 결과까지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직 걸어보기 전이었기에, 그 길의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지를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걸음은 어떤가요? 내가 걷는 이 길, 그 끝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 것인가? 무엇을 성취하게 될 것인가? 오늘도 우리는 처음 걷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처음 걷는 길이지만, 그 길의 끝에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열매가 맺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내가 걷는 이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 것인가?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언제나 기도로 준비함이 먼저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난 날 광야의 삶 속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체험하였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때에 광야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아말렉은 아주 호전적인 민족이면서, 광야에서 약탈을 일삼던 이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숫자는 많았지만, 전쟁에 있어서는 아말렉과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광야의 삶에 익숙한, 약탈하는 것에 익숙한 아말렉과의 싸움은 엄청나게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었나요? 기도의 능력입니다. 

  

모세는 언덕에 올라 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사들은 광야에서 전쟁을 치룹니다. 이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모세가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들었지만, 자신의 체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팔 아래에 돌을 쌓아올리고, 옆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잡아 주어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사실 참 이해가 안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겠다고 마음 먹으시면 어떻게 해서든 승리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모세의 손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야 승리하는 건가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죠. “기도해야 이길 수 있다.” 

  

기도가 무엇인가요? 때로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받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기도의 한 부분이지만, 정말 기도란 “내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의 저자인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도는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창고를 여는 열쇠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 열쇠를 손에 들고서는, 내 생각의 망치로, 내 경험의 도끼로 창고문을 부수려고만 합니다. 열쇠가 내 손에 들려있다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채 말이죠. 

 

 언제나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큰 일을 할 때도, 작은 일을 할 때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도, 언제나 기도로 먼저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가 걷는 이 길에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이 열려지는 형통의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진정한 겸손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아이성을 정탐한 이들은 돌아와서 말합니다. “저 아이성은 작은 성읍입니다. 군사들을 다 움직일 것 없이 한 2-3천명이면 충분합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의 보고에 따라 그대로 결정합니다. “그래. 3천명만 보내라.” 하지만 결과는 패배였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죠. 요단을 건너는 기적의 역사, 그리고 여리고성 점령에 담긴 교훈. “내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순종을 통해 요단을 건너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 힘으로 할 수 있음에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순종을 통해 여리고성을 점령하게 됩니다.” 이게 겸손인 거예요. 내 능력으로 되던, 내 능력으로 되지 않던, 일단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

  

그리고 겸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겁니다. “진정한 겸손은 언제까지나 변함 없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어제까지는 겸손하였는데, 오늘은 교만할 수도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겸손함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했는데, 오늘은 교만함으로 내 뜻대로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긴 결과가 있기 때문에, 승리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겸손함이 교만함으로 바뀌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막힘 없이 걸어왔습니다. 교만함의 유혹이 점점 나를 집어 삼킵니다.

  

지금 아이성을 정탐한 이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2-3천명이면 충분합니다. 저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이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 여리고성의 승리에 도취되어 오늘은 내 힘으로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어제 여리고성을 도는 걸음까지는 겸손했는데, 여리고성을 점령후에는 교만함이 저들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수아도 그대로 휩쓸려 교만함에 올라탑니다. 

  

인간에게는 교만함이 최고의 약점이고, 교만함의 시험이 정말 이기기 힘든 시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제 여리고성 전투에서 가졌던 겸손함을 잃어버려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본문에서 이어지는 6절부터 보면,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 쓰고, 울면서 기도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간의 범죄를 알려 주시죠. 이후에 아이성을 다시 공격하는데, 이스라엘이 어떤 전술을 사용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아이성 사람들의 교만함을 역으로 이용하십니다. 전날의 승리에 도취된 아이성 사람들은 또 다시 이스라엘이 쳐들어오자, 자신 있게 맞서 싸웁니다. 이스라엘은 거짓으로 패하는 체하면서 도망칩니다. 그러자 아이성 사람들은, 여호수아 8장 17절에 보면 아예 성문까지 다 열어놓고 이스라엘을 추격을 합니다. 자신만만함을 넘어 교만함까지 간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고 아이성을 가르킬 때에, 성 근처에 숨어있던 복병이 성을 함락하고 불을 지릅니다. 

  

진정한 겸손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내가 걷는 이 길에, 지금 견고하게 서 있다고 생각될지라도, 지금 다 왔다고 여겨질지라도, 언제나 겸손함으로 나아갈 때에 완전한 승리의 역사를 이루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으로, 정결함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이성 패배와 승리, 앞서 설명드린대로, 기도와 겸손의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정결함의 문제였습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함께 울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낙심되었고, 백성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저들의 마음이 녹아서 물 같이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힘이 다 빠져버려다는 겁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7장 1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하면 모든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짐승까지, 물건까지 다 멸하라.” 이는 하나님을 향한 첫열매의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첫 번째 점령한 성읍 여리고 전체를 다 하나님께 제물로 올려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우리 말로 십원 한 장이라도 내가 가지면, 그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망령된 일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중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죠. 아간의 죄악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유다 지파라는 가문 전체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결국 아간의 죄가 드러나고 자신이 몰래 숨겼던 물건들과 함께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아간 혼자도 아닙니다. 7장 24절에 보면 아간의 아들과 딸과 그가 기르던 소와 나귀와 양을 비롯한 짐승들까지 함께 죽임을 당합니다. 

  

여러분! 정결함이 뭔가요? 흠이 없는 겁니다. 흠은 아주 작습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늘 아간이 마치 이스라엘 전체의 악한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가 된 겁니다. 단 한 사람의 탐욕으로 인해 전체의 정결함에 손상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결하길 원하십니다. 거룩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야 승리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내가 걷는 이 길에,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이어질 영적 전쟁터에서 날마다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영적 정결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내 삶의 정결함은 십자가 보혈의 능력 뿐인 줄 믿습니다. 십자가 능력으로 정결케 되어, 내가 걷는 이 길에 완전한 승리의 역사를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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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일요시사님에 의해 2021-09-17 15:52:56 교민뉴스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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