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용 주 변호사의 법률 징검다리 - “이제 그만 하산하도록 하거라”
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새 훌쩍 커버린 자녀를 마주 대할 때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반면 사춘기에 접어 든 아이들을 이해하기는 너무도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흔히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은 고슴도치로 표현한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아이도 부모도 모두 상처 투성이가 되고 만다. 문제는 부모와 아이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바램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너무 빨리 자란다. 부모들은 자녀 문제를 놓고 학교 선생님과 상의하고, 공부 시간을 정해 놓고 고삐를 더욱 바짝 조인다. 자녀의 전화 통화를 엿듣고 감시를 더한다. 아이들 눈에는 부모란 으레 안달복달하며 훈계나 늘어놓는 존재처럼 되어 버린다.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눠 보자고 모처럼 자녀와 마주 앉은 자리는 언쟁과 규탄, 징벌로 마무리되고 만다. 위태로운 상황은 계속 이어진다. 부모는 최후통첩을 날리고 자녀들은 저항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만 해, 말 들어' 하고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그럴수록 자녀들은 원수 대하듯이 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관계에서는 이성적 사고가 끼어들 여지마저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부모가 그랬듯 아이들도 부모로 부터 독립을 하는 시점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이번 호에서는 뉴질랜드에서 청소년이 가정과 부모로 부터 독립이 허락되는 법적 기준과 경제적인 지원 가능 여부에 대해 간략히 알아 보고자 한다.
뉴질랜드에서 법적으로 나이에 따라 성인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법이 다르다. 미성년자 보호법 (Care of Children Act 2004)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자녀가 부모로 부터 독립해 나갈 수 있는 나이는 16세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 만일16세 이하인 경우라도 부모의 동의를 얻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면 법적으로 독립이 가능하다. 대개 16세 이상일 경우 법적 독립이 가능하므로 가출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 하지만 예외의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 가령 부모는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법적 보호자이다. 따라서 아이의 정신적으로 미성숙하여 쉽게 나쁜 길로 빠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아이의 독립 의사와는 반대로 법원 명령을 통해 가정을 떠나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위와 같은 판단은 가정과 부모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한다. 만일 아이들에게 물리적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여야 할 가정과 부모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폭력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가 있다면 강제적으로 그 아이를 부모로 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실제 관련법은 이러한 경우를 고려하여 적절한 조치가 마련될 수 있는 법률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일단 부모로 부터 독립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독립도 가능할 수 있을 때 그 현실성이 있다. 다행 스럽게도 정부에서 제공하는 각종 수당 중 하나로 독립한 청소년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 이를 흔히 독립 청소년 수당 (Independent Youth Benefit)이라고 한다. 이러한 독립 청소년 수당 대상이 되려면 아래와 같은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 나이가 16 또는 17세 이어야 한다.
• 독립 청소년으로 부양해야하는 자녀가 있어서는 안된다.
• 뉴질랜드 거주 2년 이상이어야 한다.
• 반드시 적극적으로 직업을 구하고 있거나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만일, 신체적인 어려움으로 직업을 찾기 어려운 경우 이를 증명해야 한다.
• 현재 고등학교 재학인 경우 위와 같은 구직 노력 요건을 충족 시키지 않아도 된다.
• 또한 부모로 부터 경제적인 지원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입증하여야 한다. (예: 부모와의 관계 단절이나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여의치 않는 경우 등). 그러나 만일 결혼이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16 또는 17세 청소년의 경우라면 부모에 대한 경제적인 의존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더라도 독립 청소년 수당 신청이 가능하다.
일단 독립 청소년 수당 신청이 접수되면 정부 지원 기관 (Work and Income)은 아래와 같은 절차에 따라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 먼저 신청인 (16 또는 17세 청소년)을 상담한 뒤 신청인의 부모에게 연락하여 아이의 독립을 위해 경제적인 지원이 가능한지 여부 먼저 파악한다.
• 만일 부모와의 관계 단절을 근거로 독립 청소년 수당을 신청한 경우라면 정부 지원 기관은 신청인을 정확히 심층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특별 집단 교육 (Group Special Education)을 주선한다.
• 이러한 특별 집단 교육을 통한 심층적 평가에는 심리상담사와의 인터뷰도 포함된다. 또한 부모와의 직접적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전문가의 소견을 작성하여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실제로 단절되었는가를 평가하고 해당 소견서를 정부 지원 기관에 제출한다.
• 정부 지원 기관을 제출된 소견서를 토대로 최종 독립 청소년 수당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만일 승인 거절이 된 경우라면 신청인은 해당 결정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16세라는 나이 기준과 독립한 청소년에 대한 정부의 경제 지원은 우리 정서와 문화에는 너무나도 낯설다. 한마디로 득도하여 하산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로 받아들여 진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입학이 일반화된 요즘 상황에서 보면 16세에 가정을 떠난 다는 것은 아주 예외적일 수 밖에 없다. 일본에서 유래된 캥거루족 (나이가 들어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더부살이 하는 자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성인들도 많은 상황이고 보니 그 나이에 부모를 떠나는 것은 독립이 아닌 가출에 더 가깝게 이해될 것이다. 게다가 지원금까지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니 이민자로써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뉴질랜드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부모로써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닌가 한다. 혹 필자의 기고문을 독립을 가장한 가출(?)을 부추기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